관장과 아전의 시 (官吏聯句)
관장과 아전의 시 (官吏聯句)
.
한 고을의
관장이 조금 어리석었다.
게다가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대충만
알고 있으니,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이 관장이
시를 무척 좋아하고
자주 짓기도 했는데,
그것을 보면
글자가 대부분 틀려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
하루는 관장이
동헌에 홀로 앉아
한가로이 앞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침 그 꼭대기에서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문득 시구가 떠올라
급히 아전을 불렀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회계(會計) 아전을 들라 하라.“
.
그리하여 아전이 들어오니
관장은 앞산을 가리키면서,
"저기 앞산에
걸어가는 곰을 보았느냐?
내 그 곰을 보고 시를 지었으니,
자네가 한번 대구를 지어 보게나."
라고 하면서 시 한 구절을 읊었다.
.
前山但見熊走去
(전산단견웅주거)
앞산에 다만 보이는 것은
걸어가는 곰이로다.
그런데 그 종이를 받아보니,
'웅(熊)'자를 쓴다는 것이
밑에 붙은 네 점을 빠뜨려
'능(能)'자로 써놓은 것이었다.
.
이를 본 아전이 속으로
웃으면서 그 대구를 지었다.
後隣惟聽犬聲來
(후린유청견성래)
뒷편 이웃에서 오직
들리는 것은
개짓는 소리로다.
.
이렇게 지은 아전은
일부러 '견(犬)'자에서 점을 떼서
‘대(大)'자로 고쳐 쓴 뒤
관장에게 보였다.
이에 관장이 한참 동안
그 대구를 들여다보다가,
쥐고 있던 종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좋기는 하다만,
어찌하여 '견(犬)'자를
'대(大)'자로 썼는고?“
.
그러자 아전은 엎드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황송하옵니다.
사또나리께서 곰의 네 발을
잘라버리고 썼사온데,
소인인들 어찌 개의 귀 하나쯤
자르지 못하겠사옵니까?“
.
이에 관장은
자기가 쓴 것을 다시 보고는,
글자가 잘못된 것을 알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