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관장과 아전의 시 (官吏聯句)

써~니 2022. 3. 29. 15:04

 

 

관장과 아전의 시 (官吏聯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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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고을의

관장이 조금 어리석었다.

게다가 한자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 대충만

알고 있으니,

실수를 할 때가 많았다.

 

 

 

이 관장이

시를 무척 좋아하고

자주 짓기도 했는데,

그것을 보면

글자가 대부분 틀려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사곤 했다.

.

하루는 관장이

동헌에 홀로 앉아

한가로이 앞산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침 그 꼭대기에서 곰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가는 것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이에 관장은 문득 시구가 떠올라

급히 아전을 불렀다.

"여봐라! 거기 누구 없느냐?

회계(會計) 아전을 들라 하라.“

.

그리하여 아전이 들어오니

관장은 앞산을 가리키면서,

"저기 앞산에

걸어가는 곰을 보았느냐?

내 그 곰을 보고 시를 지었으니,

자네가 한번 대구를 지어 보게나."

라고 하면서 시 한 구절을 읊었다.

.

前山但見熊走去

(전산단견웅주거)

앞산에 다만 보이는 것은

걸어가는 곰이로다.

 

 

 

그런데 그 종이를 받아보니,

'웅(熊)'자를 쓴다는 것이

밑에 붙은 네 점을 빠뜨려

'능(能)'자로 써놓은 것이었다.

.

이를 본 아전이 속으로

웃으면서 그 대구를 지었다.

後隣惟聽犬聲來

(후린유청견성래)

뒷편 이웃에서 오직

들리는 것은

개짓는 소리로다.

.

이렇게 지은 아전은

일부러 '견(犬)'자에서 점을 떼서

‘대(大)'자로 고쳐 쓴 뒤

관장에게 보였다.

 

 

 

이에 관장이 한참 동안

그 대구를 들여다보다가,

쥐고 있던 종이를

만지면서 말했다.

"좋기는 하다만,

어찌하여 '견(犬)'자를

'대(大)'자로 썼는고?“

.

그러자 아전은 엎드려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황송하옵니다.

사또나리께서 곰의 네 발을

잘라버리고 썼사온데,

소인인들 어찌 개의 귀 하나쯤

자르지 못하겠사옵니까?“

.

이에 관장은

자기가 쓴 것을 다시 보고는,

글자가 잘못된 것을 알고

크게 소리내어 웃었더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