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서방을 들일 건가 말 건가?
기둥서방과 주모의 송사
어느주막 주모가 갈림길에 섰다.
기둥서방을 들일 건가 말 건가?
서로 장단점이 있다는 걸 주모는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이 과부라고 깔보지 않는다.
엿장수고 갓장수고,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양물을 찬 놈들은 과부 치마 벗길 궁리만 한다.
술에 취해서 주막이 파한 후에
안방으로 쳐들어오지 않나,
곰방대에 불 붙인다며 부엌에 들어와
술상 차리는 주모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지 않나….
든든한 기둥서방이라도 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술 처먹고 밥 처먹고 나서 돈 없다고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라고
뻔뻔스럽게 나오는 놈들도 부지기수다.
해가 바뀐 외상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놈들이
어깨가 떡 벌어진 기둥서방이
치부책을 코앞에 펼치면
전대를 풀든가 물납이라도 한다.
국밥을 한참 먹다가
제 머리카락을 국밥 속에 넣고
고래고래 소리치며 새 국밥 가져오라 떼쓰는 놈,
술 두잔을 따르니 호리병이 바닥났다고 깽판치는 놈들도
기둥서방의 고함에 쑥 들어간다
. 장작도 패고 구석구석 소제도 하고
지붕 고치는 것도 기둥서방 몫이다.
이런 장점이 있지만 단점도 만만찮다.
주막집 주모의 빼놓을 수 없는 재미는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것이다.
바로 하룻밤 운우의 정을 나누고
해웃값도 챙기는 것.
온종일 눈물 흘리며 아궁이에 불 지펴
국 끓이고 밥해 상 차려내고,
고두밥 쪄서 누룩과 버무려 탁배기 걸러내 팔아도
늦은 밤 호롱불 아래서 계산을 해보면 별것이 없다.
땀 흘린 품값을 제쳐 놓더라도
매상고에서 재료비를 빼고 나면 한숨만 나온다.
그런데 남정네와 하룻밤 자고 나면
재미는 재미대로 보고
재료비 한푼 안 들어간 해웃값은
고스란히 알돈이다.
허나 기둥서방이라고 들여놓으면
그 짓을 할 수 없다
. 또 하나,
기둥서방은 기둥서방일 뿐인데
이게 주인행세를 하며
친구들을 데려와 공짜 술을 주거나
돈통에 손을 대기도 한다.
청풍 나루터 주막.
서른 아홉살 주모는
아직도 박가분을 바르면
눈 밑의 잔주름을 감추고
처녀까지는 몰라도
청상과부 행세는 할 수 있는데,
한해 전에 왈패들 등쌀에 못 이겨
홀아비 우 서방을 기둥서방으로 맞아들였다.
지난 단옷날,
씨름판에서 황소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주막으로 들이닥쳐
술 한독을 다 비우고
호탕하게 웃어 젖히는 게 너무 멋있어
주모가 먼저 꼬리를 쳐서
우 서방을 안방으로 끌어들여 호롱불을 껐다.
그 큰 덩치로 꾹꾹 누르는 통에
주모는 세번이나 숨이 넘어갔다.
이튿날부터 우 서방이 안방을 차지하고
가끔 문을 열고 큰기침을 하니
조무래기 왈패들이 얼씬도 못했다.
우 서방은 부러진 평상 다리도 고치고
수챗구멍도 치우고
밤이면 주모를 기절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 이렇게 여섯달을 착한 기둥서방으로 보내더니
여섯달이 지나자
저잣거리 건달생활이 그리웠던지
주막을 나가 쏘다니기 시작했다.
노름판에 매달려 열흘씩 집을 비우고
가뭄에 콩 나듯이 주막으로 와도
곤드레만드레 쓰러져 코를 골아,
부엌에서 뒷물하고 온 주모를 뚜껑 열리게 했다.
외상값 받아서 노름판으로 직행하는 일도 생겼다.
우 서방이 타지로 원정도박을 갔다가
보름 만에 주막으로 돌아올 때 새벽닭이 울었다.
안방 문을 열자 주모는 발가벗은 채 이불로 몸을 감쌌고,
어떤 놈이 옷을 옆구리에 찬 채 튀는 걸 우 서방이 낚아챘다.
불을 켜고 보니 약재상을 하는 부자 홍 첨지였다.
우 서방과 홍 첨지가 탁배기를 주고받으며
흥정을 시작했다.
홍 첨지가 백냥부터 시작해 천냥까지 올렸으나
우 서방은 팔자를 고치겠다는 듯이
삼천냥을 요구했다.
결국 세사람은 사또 앞에 서게 됐다.
주모가 ‘친정아버지 보증빚 갚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기둥서방은 외상값을 받아 노름판에 간다’고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 게 먹혀들었다.
사또의 판결은 이랬다.
“기둥서방의 본분을 망각한 우 서방은
홍 첨지의 멱살을 잡을 권한이 없다
. 주모로부터 기둥서방 직책에서 해고됐으니
앞으로 주막 출입을 금한다.
그리고
홍 첨지는 주모에게
해웃값으로 천냥을 지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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