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그시절

막걸리 심부름

써~니 2023. 1. 2. 12:24

 

🍎 막걸리 심부름




어릴 때 아버지께서 바다일을 마치시고 집에 오실 시간이면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드실 막걸리를 사오라며 주전자
심부름을 시키곤 하셨죠...
주전자 속 가득 담긴 막걸리가 무거워...
또는 호기심에 주전자 주둥이에 입대고 쭈욱 한모금 하면....
참 이상 야릇한 맛에 기분이 몽롱하곤 했지요....

줄어든 막걸리 양에 어머니께서 야단치시면 오다가 조금 흘렸다며
붉어진 얼굴로 뻔한 거짓말을 하던 그 시절이 생각납니다..

장남도 아니고 막내도 아닌 나는 주전자 심부름을 주로 담당했었는데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심부름 할 때마다 한 모금 한모금 몰래
훔쳐먹는 막걸리때문에 어느 날. 무더운 여름 날...일이 터져 버렸습니다.

한참 친구들과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주전자 심부름을
갔다오라고 하셨죠.
신나게 놀고 있는데....
주전자 심부름을 갔다오라고 하니 짜증이 났지만...
빨리 해치우고 친구랑 놀 욕심으로 한 놈을 꼬셔서 같이 갔는데....

날씨도 덥지... 금방 신나게 뛰어 놀았지...
갈증이 장난아니였지요...
나는 평소대로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쭈욱 한모금 했는데...
아니 같이 간 친구놈도 자기도 한모금 하자고 하네요...

내 한모금 친구 한모금 하다보니 평소 주전자보다 가벼워졌고
그 무게를 충당하기 위해 우물 물을 쬐금 탔는데...
설마 모르시겠지 했는데...

바다일을 하시고 돌아온 아버지께서 시원한 등목을 하신 후
어머니께서 차려온 두부와 김치에 막걸리 한잔을 쭈욱 들이키시는 순간
"어떤 노무쎅끼가 막걸리에 물 탄노"하시며 노발대발 하셨지요
좀처럼 화를 내시지는 않으시지만 한번 화나시면 끝장을 보시는 분이시라
"나 죽었네"하고 처분만 기다리며 눈만 껌뻑이고 있었는데

아버지 하시는 말씀이
"막걸리에 물 타면 술맛 버린다아이가"
"앞으로 술에 물타면 그만 않둔다"하며
누구(?)더러 듣으라고 혼자말을 하시고 그냥 그 일을 덮어 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나의 주전자심부름의 작은(?) 재미는 사라졌지만
그 때 아버지의 큰 가르침은 성인이 된 나의 酒道가 되었다.
자신의 막걸리에 물 탄 작은아들의 만행을 뻔히 아시면서도
직접 나무라시지는 아느시고
큰소리로 "막걸리에 물 타면 술맛 버린다 아이가"하며
혼자말로 가르침을 주신 아버지의 그 음성이 비 내리는 오늘따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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