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지간
첩첩산중 청석골 외딴 너와집.
저녁 연기 모락모락 피어올라 골짜기로 파르스름하게 깔릴 때 젊은 심마니 봉추가 들어왔다.
가장 반기는 건 이 집 딸 달래다.
“오라버니, 오늘 심봤소?”
“심은 못봤어도 백년 묵은 하수오도 캐고, 달래 주려고 개암도 따고 산딸기도 듬뿍 땄네.”
부엌에서 달래 어미도 나오고 안방문을 열고 헛기침을 뱉으며 달래 아버지도 얼굴을 내밀었다.
열여덟 살 봉추는 이 집 데릴사위고, 열네 살 달래는 두해만 지나 열여섯이 되면 혼례를 올리고 봉추와
가시버시가 될 참이다.
조실부모하고 한약재상에서 시동으로 일하며 목숨을 이어가던 어린 봉추는 심마니를 따라
칠팔년 산을 타다가
사부가 죽고 나자 혼자 산을 타왔다.
소나기가 쏟아질 때나 삼 캐는데 혼이 팔려 날 저무는 것도 모를 때 봉추는 달래네 집에서 하룻밤씩 자고 갔다.
화전 밭떼기에 매달린 달래네는 달래가 혼기가 차 멀리 시집보낼 생각을 하면 앞이 캄캄하던 차에
봉추를 눈여겨보게 됐다.
기골이 장대하고 심성이 착한 데다 부모마저 없으니 데릴사위로서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봉추도 한창 피어나는 달래가 보고 싶어 일부러 날이 저물었다며 달래네 집을 찾던 차에
달래 아버지가 넌지시 떠보자 못 이기는 척 큰절을 올렸다.
부모 정을 모르고 자란 봉추는 달래 부모를 친부모처럼 극진히 모셨다.
봉추를 괴롭히는 것은 세월뿐이다.
빨리 달래가 열여섯 살이 되어 혼례를 올려야 하는데 이놈의 세월은 여물 씹으며 가는 황소걸음이다.
온 산이 붉게 타는 봄날, 달래가 봉추를 따라 산에 갔다가 일부러 발목을 삐었다고
주저앉으면
봉추는 그 넓은 등짝에 달래를 업고 두 손으로 달래 엉덩이를 받쳐주었다.
여름에 봉추가 계곡물에서 멱을 감다가 달래를 부르면 홍당무가 된 달래가 등물을 퍼부었고,
“내가 등 밀어줄까?” 봉추가 말하면 “싫어 싫어” 하며 또 물을 퍼부었다.
달래네 집에서 산봉우리 하나를 넘고 계곡을 건너면 장곡사가 있다.
달래네 데릴사위가 되기 전에 봉추는 산을 헤매다 가끔씩 장곡사 신세를 졌는데,
조실 허탄스님이 봉추를 귀여워해 그 방에서 함께 자곤 했다.
어느 날 허탄스님이 몸져누웠다는 소식을 듣고 봉추가 찾아뵀다.
스님은 힘겹게 일어나 벽에 기대어 앉더니 앙상한 손으로 봉추의 손을 잡고 슬픈 표정으로
무겁게 입을 열었다.
“봉추야, 이 당부를 네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한없이 괴롭다.
네가 달래네 데릴사위로 들어간 것도 내가 달래 애비에게 청을 넣어서 그렇게 됐다.
그런데 그런데, 콜록콜록!”
큰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육갑을 짚어보고 사주팔자에 주역을 봐도 너하고 달래하고는 합칠 수가 없다.
순리를 어기면 달래는 유복자를 안고 한평생 눈물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비틀거리며 달래네 집으로 돌아온 봉추는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울고 또 울다가 달래를 꼭 껴안아보고 그 집을 떠났다.
그 이후 봉추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는 이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십줄에 접어든 남정네가 망태기를 메고 풍기 장터를 헤매다가 한 아낙네를 보고 얼어붙었다.
“다다달래, 달래야!”
“오라버니!”
국밥집에 마주 앉은 봉추와 달래는 두 손을 잡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봉추는 몇 년 전에 홀아비가 되었고, 달래는 열여섯에 시집가서 이듬해 청상과부가 돼 유복녀를 뒀다.
봉추가 허탄스님의 말이 생각나 무릎을 쳤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두 사람은 홀아비와 과부가 되어 한 많은 세월을 탓하며 두 번 다시 헤어지지 말자고 손을 꼭 잡았다.
봉추는 그때 달래네 집에서 나와 먼 단양에 터를 잡고 소백산을 훑으며 지금껏 심마니 생활을
하고 있고,
아들 하나는 보부상이 되어 팔도강산을 떠돌고 있다.
청상과부가 돼 시집을 나온 달래는 풍기의 고모가 운영하는 포목점에서 일하다가 바느질
솜씨가 좋아
집에서 바느질만 하고 있고, 과년한 딸은 포목점에서 일하고 있다.
봉추와 달래는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 혼례를 올리기로 했다.
들뜬 봉추는 단양 초가집을 팔고 풍기에 반듯한 기와집을 새로 사서 도배도 하고 여기저기 손을 봤다.
봉추의 아들이 연락이 닿아 제 아비를 찾아왔다.
봉추가 아들에게 기와집을 새로 산 연유와 바로 다음 달인 춘삼월에 혼례를 올리겠다는
얘기를 했더니
아들이 뛸 듯이 기뻐하면서 자신도 정해 놓은 색시감이 있다며 사월에 혼례를 올리겠다는 것이다.
봉추 부자, 달래 모녀가 상견례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봉추와 달래는 기절을 했다.
봉추 아들의 색시감이 바로 달래 딸인 것이다.
그 둘은 벌써 물레방아간을 들락날락한 사이였다.
달래 딸이 헛구역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방법은 하나, 봉추와 달래는 사돈지간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야담, 야설,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말을 들어주면 아무 말 않겠소 (0) | 2022.01.27 |
---|---|
장맛비 퍼붓는 밤 오생원 (0) | 2022.01.26 |
변 서방의 삼겹 쇠상자 (0) | 2022.01.21 |
스님과 보살 (1) | 2022.01.14 |
역사속에 황진이, 장녹수, 양귀비 (0) | 2022.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