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나 지금이나 예쁜 여자를 아내로 둔 남자들은 혹시나 다른 남자들이 유혹을 할까? 늘
걱정인 것 같다. 여자는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고 하는데 그런 이유에서
예쁜 여자를 애인으로 혹은 아내로 둔 남자들은 불안해진다.
오래전 십자군 원정을 나가는 로마의 남자들이 오랜 기간 집을 비우면서 아내가 홀로 지내는
것이 염려하여 정조대를 채우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도 정조대는 아니지만 여성의 옥문 입구
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 놓고 집을 비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여기에 얽힌 재미난 사연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옛날 어느 마을에 머리가 약간 부족한 농부가 살았다. 농부는 운이 좋아 아내만큼은 천하의 절
색을 얻게 되었다. 하루는 먼 곳에 급한 볼일이 생겨 부득이 하게 집을 비울 일이 생겼는데 농
부는 자기가 집을 비운 사이 혹시 누군가 예쁜 아내를 꼬드겨 그 짓을 할까 걱정이 되었던 것
이다. 결국 이런 저런 궁리 끝에 농부는 아내의 아랫도리를 벗기고 눕게 하여 그 곳 위에 사슴
을 그려 넣고는 안심하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언제나 틈만 엿보던 이웃집 총각은 농부가 길
을 떠난 것을 알고는 농부의 집으로 찾아와 농부의 아내에게 간곡히 사정을 했다. “제발 한 번
만 안을 수 있게 해주시오. 소원이요.”
평소 농부의 아내도 그 총각에게 마음은 있었으며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남편이 그려 넣은 사슴 때문에 한숨을 쉬면서 안 된다며 한사코 거절을 했다. 총각은 그 연유
가 무엇인지 물었다.
“남편이 내 아랫도리에 사슴을 그려 넣고 가셨어요.”
이 말을 들은 총각은 기뻐하면서 껄껄 웃었다.
“어디 좀 보여주시구려.”
농부의 아내가 아랫도리를 벗고 그곳을 보여주자 총각은 참을 수 없을 만큼 흥분이 되었다.
“내 이 사슴과 똑 같이 그려 넣을 테니 걱정 마시오.”
농부의 아내도 젊은 총각의 크고 우뚝 솟은 콧날을 보니 춘정이 동했던 것이다. 마침내 농부
의 아내와 총각은 벌거숭이가 되어 한참을 뒹굴었다. 일을 마친 다음 총각은 농부 아내의 거기
를 살펴보았더니 예상대로 농부가 그려 넣은 사슴이 많이 뭉개져 있었다. 총각은 기억을 더듬
어 사슴을 그려 넣었다. 그런데 너무 흥분한 나머지 농부가 그린 누워 있는 사슴 대신 서 있는
사슴을 그려 넣고는 만족해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행여 아내에게 무슨 불상사라도 일어날까 싶어 먼 길을 한 걸음에 달려온 농부는 방에 들어서
자마자 아내의 은밀한 부위를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당연히 누워 있어야할 사슴이 서 있는 것
이 아닌가? 농부는 마구 화를 냈고 아내는 일이 틀어진 것을 직감하였다. 그럼에도 아내는 애
서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꾸며댔다.
“당신은 사물의 이치를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사람도 누웠다가 일어났다 하는데 사슴이라고
늘 누워만 있으라는 법이 있나요?”
“그건 그렇다고 해도 내가 그린 사슴은 뿔도 비스듬히 자빠져 있었는데 이 그림에는 왜 이리
뿔마저 불뚝 서 있는지 모르겠소.” 기가 꺾인 농부는 푸념하듯 말했다.
“사슴이 누우면 뿔도 누울 것이고, 사슴이 일어서면 뿔도 일어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세
상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아내가 기세등등하게 이야기 하자 농부는 아내를 끌어안으면서 감탄을 하였다.
“당신은 모르는 것이 없구려, 난 왜 그것을 몰랐을까?”
그 후 농부와 아내는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 농부가 바보였을까? 농부는 자기
가 먼 길을 떠나면서 아내의 그곳에 사슴을 그려 넣음만큼 영리한 사람이었으며 자기가 그린
그림의 특성도 기억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아내에게 속아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부가 아내
의 부정을 알았다고 해도 그는 덮어주었을 것이다. 한 번의 실수로 천하절색의 아내를 잃게 된
다면 자신도 손해가 만만치 않았으리라는 계산을 그도 할 줄 알았다고 생각한다. 부부들이
오랫동안 살다보면 때론 실수를 하는 일도 있고 얘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잠깐
의 감정에 휩싸여 극단적인 결론을 내기보단 한걸음 물러서서 이성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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