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도 없이 한양에서 아들 식구가 내려왔다.
홀어미 밑에서 자라 무과에 합격해 금위영에서 일하는 외아들이 아리따운
제 처와 깐 밤 같은 손자 두 놈을 데리고 고향 영동 땅으로 어미를 찾아온 것이다.
아들의 큰절을 받는 서천댁은 그저 흐뭇할 뿐이다.
“어머님, 이번에 제가 함경도 회령 병마절제사로 발령받았습니다.”
아들은 승진을 기뻐하는데, 어미는 머나먼 변경으로 아들을 보내려니 걱정이 앞섰다.
“무신은 변경에서 4~5년 근무해야 한양에 돌아와 요직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외적과 마적이 떼로 우글거리는 변방에 처자식을 데려갈 수 없어 며느리와 손자들은
본가에 맡겼다.
손자 두 녀석은 첫날부터 제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잠자리도 안방 할머니 곁에 잡았다.
닷새를 고향집에서 쉬고 내일이면 홀로 함경도로 떠나갈 아들 생각에 서천댁은 잠이 오지 않았다.
온종일 뛰어놀던 손자 두 녀석은 양쪽에서 늘어지게 잠들었다.
서천댁은 일어나 뒤꼍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외아들 무사하게 해달라고 천지신명께
조용히 빌고 있었다.
그때 사랑채에서 비명이 밤의 정적을 깨뜨렸다.
깜짝 놀란 서천댁이 사랑채로 가다 말고 발걸음을 멈췄다.
며느리의 감창이다.
흐느끼다가 숨이 넘어가다가 괴성을 지르다가 철퍽철퍽하다가…
어느덧 서천댁은 사랑방 창밖에 쪼그리고 있었다.
며느리의 외마디 비명 후 정적이 흐르더니
“서방님이 없으면 긴긴 세월을 나는 어떻게 살아요?”
“빨리 돌아오도록 하겠소.”
“너무 보고 싶으면 나 혼자 함경도로 찾아갈까 봐.”
철썩 엉덩이 때리는 소리가 나더니 또다시 숨이 가빠지는 걸 듣고 서천댁은 안방으로 돌아왔다.
이튿날, 아들은 어미에게 큰절을 올리고 두 아들을 껴안아보고 훨훨 먼 길을 떠났다.
고래 등 기와집에 사람 사는 맛이 났다.
서천댁 친정 쪽 조카뻘인 집사 겸 행랑아범 주 서방과 단둘 이만 살던 이 큰집에 며느리와
손자 둘이 합쳐지니 갑자기 떠들썩해졌다.
서천댁은 안채를 차지하고 사랑채는 며느리가 자리 잡았다.
며느리 얼굴에 수심이 차기 시작했다.
아이 둘 낳았지, 이제 한창 음양의 합환에 눈뜰 시기에 남편이 돌아올 기약 없이 멀리
떠나갔으니 한숨이 날 수밖에.
서너 달이 지난 어느 날
방물장수가 안방에서 박가분과 동백기름을 서천댁에게 권하고 있었다.
“바른말하면 내가 이걸 살 터.”
“뭐든지 물어보십시오, 마님.”
“얼마 전, 사랑채에서 우리 며느리에게 무엇인가 팔았지! 그게 뭔가?”
방물장수가 입을 막고 살짝 웃더니, “목신(木腎)입니다요.”
서천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른 데 가서 소문내지 말게.”
어느 날 밤, 며느리가 부엌에서 설거지를 끝내고 목간을 하고 있었다.
아궁이 장작불빛에 붉게 어른거리는 농익은 여인의 발가벗은 몸매를 훔쳐보는 눈이 있었다.
서천댁의 헛기침 소리에 절구통을 딛고 부엌 살대 사이로 타는 눈길을 보내던
주 서방이 머리를 긁으며 슬금슬금 사라졌다.
이 넓은 집에 남자 구실을 하는 남자는 주 서방뿐이다.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30대 후반의 주 서방은 이 집의 집사로, 그리고 행랑아범으로
대주였던 허 진사가 죽기 전부터 있었으니 얼추 10년도 넘었다.
허 진사가 피를 토하며 7~8년 드러누워 있을 때 서천댁이 친정에 갔다가 조카뻘 되는
주 서방을 데려온 것이다.
그는 성실하고 입이 무거웠다.
이상한 것은 항상 두건을 쓰고 다닌다는 거였다.
밤이나 낮이나.
아침상을 물리고 난 6월 어느 날,
“어미야, 사나흘 친정에 다녀오마.”
서천댁이 말하자 며느리가
“이 장마철에요?”
“이때 가야 육젓을 얻어오지.”
할머니를 따라가겠다는 손자 둘을 떼어놓고 주 서방을 앞세워 집을 나섰다.
고개 하나를 넘은 주 서방과 서천댁은 방향을 틀었다.
서천으로 가는 길은 서쪽인데 반대로 동쪽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저녁나절 그들은 김천에 닿아 단골 주막집 구석진 객방에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문을 잠그고 주 서방이 두건을 벗어던졌다.
번들거리는 민머리다.
훌훌 옷을 벗어던지자 서천댁도 서둘러 옷을 벗고 무릎을 꿇은 채
주 서방 사타구니에 얼굴을 묻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일합을 치르며 서천댁 입에서
“헥헥, 스님 얼마나 헥헥 스님 품이 헥헥 그리웠는지.”
“나도 미칠 뻔했소. 보살님을 안고 싶어서 헉헉.”
서천댁과 주 서방은 사흘 동안 그 방에서 머무르다 김천장에서 육젓 한독을 사 갔다.
손자가 둘이지만 서천댁은 이제 마흔하나요,
주 서방은 친정 쪽 조카뻘이 아니라 탁발 땡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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