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초시가 또 낙방거사가 되어
네번째 과거를 보러 간 이 초시가 또 낙방거사가 되어 두달 만에 집으로 돌아오는데,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 난다’고 여자를 하나 꿰차고 왔다.
이 초시 부인 덕실댁은 기가 막혔다.
이 초시가 대과에 급제할세라 삼년 전 시집올 때 친정아버지가 서른마지기 문전옥답을
혼수로 딸려 보냈는데 급제는 고사하고 첩을 데리고 오다니!
선대부터 물려받은 그 많은 재산을 다 팔아없애고 대궐 같은 스물네칸 기와집도
담보로 잡혀 남의 손에 넘어갈 판인 걸 덕실댁 친정아버지가 큰돈을 들여 담보를 풀어주었는데,
첩을 데리고 와 사랑채에 앉히다니!
대문은 하나지만 안채와 사랑채는 딴 집이나 마찬가지다.
중간에 담이 있고 담 사이에 중문이 있지만 이쪽에도 저쪽에도 걸쇠가 있어 중문은 드나드는
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사랑채에는 작은 부엌도 딸려 있어 어떤 날은 고기 굽는 냄새가 중간 담을 넘어와
덕실댁 오장육부를 뒤집어놓았다.
얼굴에 철판을 깐 이 초시가 본처인 덕실댁을 배려한답시고 하루씩 교대로 잠을 자지만
안채에서 잘 땐 저녁 수저만 놓았다 하면 쓰러져 코를 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첩년과 진한 밤을 보냈으니 다음날은 곯아떨어지는 게 당연지사!
안채에서 하룻밤, 사랑채에서 하룻밤이 아무 의미가 없다.
덕실댁이 어느 날 장에 갔다오다가 친정아버지가 사준 동구 밖 논에서 낯선 사람이
나락을 베고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지난봄에 그 논을 이 초시로부터 샀다는 대답이다.
덕실댁은 곧바로 신발을 신은 채로 사랑채로 달려들어가 경대를 부숴버리고, 장롱 문짝을
뜯어버리고, 형형색색 비단옷을 부엌 아궁이에 쳐넣어 불 지르고, 장작을 들어 장독을 깼다.
그러고 나서도 분이 안 풀려 첩년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양반집에서 시집온 점잖고 후덕한 덕실댁도 시앗 대하는 것은 체면이고 뭐고 없다.
한참 난동을 부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아수라장이요,
두 손에는 첩년의 뽑힌 머리카락이 한움큼씩 쥐어져 있다.
첩년은 고개를 땅에 박고 울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살림을 박살 내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어도 첩년은 조금도 덕실댁에게
대들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사또 앞의 죄인처럼 굴었다.
눈물 범벅이 된 첩년이 꿇어앉아
“마님, 쇤네가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소곳이 방으로 들어가더니 보따리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머리를 매만지며 나와
“마님, 안녕히 계십시오”
머리 숙여 인사하고 대문을 열고 나갔다.
첩이 나루터에 다다르기 전에 누군가 헐레벌떡 따라오며
“여보게~”
소리 질러 혹시나 싶어 돌아봤더니 덕실댁이다.
첩을 얼싸안고 덕실댁이 대성통곡을 했다.
“내가 잘못했네. 자네를 이렇게 떠나보내면 안되네.”
안방 호롱불 밑에서 첩을 자세히 보니 티 없이 맑은 앳된 얼굴이다.
“이름이 달래라 했지?”
“네, 마님.”
“이제부터 나를 마님이라 부르지 말고 형님이라 부르게.”
그사이 이 초시가 대문을 열고 들어와 사랑채로 발걸음을 옮겼다가 난장판이 된 살림살이를
보고는 뒤돌아나가 주막집에서 벌컥벌컥 술만 퍼마셨다.
덕실댁과 달래는 기묘한 인연으로 만나 끝없이 이야기 끈을 이어갔다.
달래는 한양 남산골에서 홀어미와 조그만 국밥집을 하고 있었는데, 허우대가 멀쩡한
이 초시가 들락날락하며 어떻게 홀어미를 구워삶았는지 어느 날 밤 국밥집 문을 닫은 후
어미가 불렀다.
“달래야, 나도 늙어 이제 이 국밥집 꾸려가기가 어렵고 너도 시집을 갈 때가 됐다. 삼년 전
결혼한 이 초시의 새 신부가 석달 만에 이승을 하직했단다. 네가 이 초시에게 시집가면 이
국밥집 정리되는 대로 나도 데리러 오겠단다.”
말을 마친 달래가 눈물을 글썽거렸다.
덕실댁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초시란 인간, 그런 거짓말하고도 남을 사람이지. 저 인간 매독에 걸려 독한 약을 쓴 후에
씨 없는 불알을 차고 있어 아이도 못 낳네.”
사흘이 지났다.
이 초시가 꼼짝도 안해 파락호 친구들이 찾아갔더니,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두손은 꽁꽁 묶인 이 초시가 안방 시렁에 매달려 있었다.
똥오줌으로 악취가 진동하는데, 양물 뿌리 쪽을 비단실로 단단히 묶어놔 귀두가
검게 썩기 시작했다.
덕실댁은 친정아버지가 마련해준 논밭을 모두 팔아치우고 달래와 흔적 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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