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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에 익숙한 사회

써~니 2022. 11. 7. 12:23

 

♣ 과밀(過密)에 익숙한 사회 ♣

1970년대 서울에서 등굣길 만원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들에겐

특유의 운전 기법이 있었어요

이른바 ‘욱여넣기 회전’ 기술이지요

버스 중간에만 출입구가 있었고

스무 살 남짓한 젊은 여성이 버스 차장을 할 때 이야기지요

 

버스 차장이 출입구 손잡이를 잡은 채 버스 옆구리를 손 바닥으로

탕탕 치며 "오 ~ 라이" 하며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출발시키면

기사는 안쪽 차선으로 들어가 20~30m쯤 가다가

갑자기 핸들을 오른쪽으로 홱 돌려버리지요

그러면 출입구 쪽에 몰려 있던 승객들이 버스 안쪽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공간을 확보한 버스 차장은 그제야 문을 닫아요

이것이 콩나물시루 같은 아침 등굣길 일상이었어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서울 지하철엔 ‘푸시맨’이 있었지요

만원 전철 문이 닫히도록 승객을 힘으로 밀어 넣는 아르바이트였어요

요즘 같으면 성추행 시비도 벌어졌을 법한데

그때만 해도 제법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였지요

10년 전 한 방송 퀴즈 프로그램 문제로도 나왔어요

안전사고 문제가 제기되면서 푸시맨은 사라지고

2008년엔 무리한 탑승 시도를 막는 ‘커트맨’이 등장하기도 했지요

그래도 과밀(過密)에 따른 안전 문제는 여전했어요

 

혼잡한 서울 지하철 출퇴근길은 늘 아슬아슬하지요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울 때가 많은데도

일부 승객은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몸을 욱여넣어요

지난해 혼잡도가 가장 높았던 9호선이 대표적이었지요

전동차 한 칸 표준 탑승 인원은 160명인데,

지난해 출근길 9호선 일부 구간의 열차 한 칸엔 약 300명이 타고 있었어요

서울과 수도권을 잇는 광역 버스도 전쟁터를 방불케 할 때가 많지요

지금도 과밀(過密)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과밀(過密)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하지요

1968년 동물 행동학자 존 캘훈은 과밀의 결말에 대한 실험을 했어요

가로세로 2.7m 공간에 쥐들이 잘 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지요

빠르게 번식하던 쥐들은 개체 수가 2200마리로 정점에 이르자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았어요

과밀(過密)로 생긴 스트레스가 원인으로 분석됐지요

번식이 멈추면서 개체당 공간이 늘었지만 개체 수는 다시 늘지 않았어요

실험은 몇 년 뒤 마지막 남은 쥐가 죽으면서 끝났지요

이처럼 과밀(過密)은 종족 번식에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지요 

 

이번 이태원 참사도 많은 인파가 몰린 과밀(過密)에서 일어났어요

이태원동 중심의 해밀톤호텔 옆에 있는 폭 3.2m, 길이 40m 정도의 좁은 골목길에

13만명에 이르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발생 했지요

 

3년 만에 사회적 거리 두기 없는 핼러윈을 맞아 이를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대거 이태원으로 몰려 왔어요

사망자 상당수도 20대였지요

이번 사고는 단일 사고 인명 피해로는 304명이 사망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최대 참사였어요

1960년 서울역에서 설 귀성객들이 계단에서 밀려 30여 명이 사망한 사고와

1965년 광주 전국체전 개막식 때 입장객들이 좁은 문으로 한꺼번에 몰려

12명이 사망했던 일보다 훨씬 끔찍한 압사 사고이지요

 

사고 발생 장소는 이태원동 해밀톤호텔 뒤편인 세계음식거리에서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로 내려오는 좁은 골목길이었지요

번화가와 대로변을 잇는 경사진 골목이다 보니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이태원역에서 나와 올라가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때 누군가 넘어지면서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깔렸다는 것이지요

골목길 한쪽은 호텔 벽으로 완전히 막혀 있고

다른 한쪽은 영업을 하지 않거나 문이 닫혀 있는 가게들이어서

사람들이 피할 틈이 없었던 것도 화를 키웠어요

사고 직후 현장은 아비규환(阿鼻叫喚)으로 변했지요

 

당시 동영상을 보면 인파에 사람들이 겹겹이 깔려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맨 아래에 깔린 피해자를 빼내려 했으나

위에 뒤엉킨 사람들의 무게 때문에 포기하기도 했지요

 

전문가들은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은 4분가량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인근 소방서와 사고 현장은 100m 거리로 멀지 않았지만 워낙 인파와 차량이 몰려 있어

구급대원들이 도착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제대로 구조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고 하지요

심정지와 호흡곤란 환자가 300명 가까이 나오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급대원도

턱없이 부족해 시민들까지 가세했지만 역부족이었어요

사고 초반 피해자들이 길가 곳곳에 방치된 채 놓여 있기도 했지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세상에 이럴수가 ~~

아무렇지도 않은 멀쩡한 도로에서 이런 불상사가 일어 나다니 ~~

사람이 콩나물 시루처럼 너무 많이 모여도 죽을수 있구나 ~~

과밀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

 

사람들은 이번 사건 이후 과밀(過密)에 공포를 느낀다는 말들을 하고 있어요

인구 950만명인 서울의 인구밀도는 1㎢당 1만5699명으로 부산의 4배에 가깝지요

지금껏 과밀이 일상이었는데 위험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지요

미국의 어느 재난 전문가는 이태원 참사 원인으로 시민들이 과밀에 익숙하다는 점을 꼽았어요

“그래서 위험을 감지하지 못했을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어쩌면 과밀(過密)의 위험을 지금껏 너무 안일하게 넘긴 대가를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는지도 몰라요 

 

▲ 옛날 콩나물 버스

▲ 콩나물 지하철

▲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3시간 전 이태원 카페거리 인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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