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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잉글랜드

써~니 2022. 12. 17. 17:49

 ♣ 일본과 잉글랜드  ♣

 

최근 세계 축구를 이끄는 핵심적인 키워드는

‘빌드업’ ‘압박’ ‘전환’ 세 가지이지요

수비 진영부터 정확하게 상대 진영으로 볼을 전개하는 빌드업,

상대 팀의 공격을 조직적으로 방해하는 압박,

볼을 빼앗았을 때 상대의 빈 공간을 효과적으로 파고드는 전환

이 세 가지를 두루 갖춘 팀이 세계 축구를 지배하고 있어요.

 

일본 축구 대표팀은 지난 16강전에서 유럽의 강호 크로아티아를 맞아

이 세 가지를 다 보여줬지요

빌드업과 전환의 경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차분한 패스 전환과

역습을 위한 빠른 패스 전개를 두루 활용했어요

압박의 경우에도 상대 진영부터 조이는 전방 압박과

아군 진영으로 상대를 깊게 유인해 압박하는 후방 압박까지

시의적절하게 사용했지요

비록 승부차기에서 패배했지만 경기 내용은 세련되고 변화무쌍한

‘트렌디한 축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강호 독일과 스페인을 꺾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증명한 셈이지요

 

지난달 27일 일본이 코스타리카에 0대1로 패하자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JFA) 회장이

축구 팬들에게 “실망시켜 죄송하다”고 밝혔지요

그러자 일본 팬들은

“일본 축구는 ‘100년 구상’인데 아직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다”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요

 

일본 팬들이 말한 ‘100년 구상’은

1993년 J리그가 출범할 당시 JFA가 “앞으로 100년 이내에

일본이 월드컵에서 우승하도록 일본 축구를 발전시키겠다”며

내놓은 청사진을 말하지요

이는 단순한 공수표가 아니지요

JFA는 이 100년 구상을 지금도 차근차근, 진지하게 밀어붙이고 있어요

영국과 독일의 선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국내에 도입하고,

협회 차원에서 J리그 구단에 장려금을 줘가며

뛰어난 국내 선수를 유럽에 진출시키지요

올해 초 기준 한국 유럽파 선수는 15명, 일본은 이의 6배에 가까운 85명이지요

 

J리그 출범 초기부터 브라질의 지쿠와 둥가,

영국의 게리 리네커 등 전성기가 지난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해

리그 흥행과 축구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한 노력을 여전히 계속하고 있지요.

스페인의 ‘티키타카’ 축구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도

현재 J리그에서 활약 중이지요

리그 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승강제(리그 하위 팀이 하위 리그로 내려가고,

하위 리그 상위 팀이 상위 리그로 승격하는 제도)’의 경우,

일본은 1999년에 도입한 반면

일본보다 10년 먼저 프로 리그를 출범시킨 우리나라는

2012년에야 승강제를 도입했어요

 

풀뿌리 축구도 계속해서 강화하고 있지요

대한축구협회(KFA)에 등록된 축구 선수가 9만명인데

JFA에 등록된 축구 선수는 무려 81만명이지요

프로 선수와 생활 축구인의 경계가 뚜렷한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프로 선수와 아마추어 선수의 간격을 좁히는 데도 집중하고 있어요

‘축구의 인기와 축구 선수의 수가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을 결정한다’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이번 월드컵에서도 대형 스트라이커가 부재하고

탁월한 신체 조건과 기량을 가진 세계적인 수비수를 찾지 못한

일본 축구의 고질적 한계가 재현됐어요

일본은 신체 조건의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패스 중심의 축구로 좋은 미드필더들은 많이 배출했지만,

아직 손흥민이나 김민재 같은 ‘월클’ 공격수와 수비수는 가져본 적이 없어요

전반전에 고전하던 크로아티아가 후반전에는 장신 공격수와

공중볼을 적극 이용하자 결국 동점골이 터졌고,

이후에도 일본 선수들은 이런 ‘공중전’에 고전하는 기색이 역력했지요

만약 일본에 김민재와 손흥민 같은 선수가 2명 있었다면,

경기 결과는 사뭇 달랐을 듯 하지요

 

한국도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 개선되고 지도자 수준도 빠르게 향상되면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어요

하지만 전문가와 선수들은 “일본에 비하면 멀었다”고 입을 모으지요

대한민국 16강의 주역인 황인범 선수가 귀국 직전

“한국 축구가 아등바등해서 16강에 가는 기적이 아니라

일본이나 다른 나라처럼 좋은 모습을 꾸준히 월드컵에서 보여주려면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지요

 

일본이 이번 월드컵에서 빌드업과 압박, 전환 세 가지를 다 보여줬다면,

벤투가 이끌었던 한국은 이제 빌드업 하나를 마스터한 것이

두 나라의 간격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국은 이미 손흥민, 김민재뿐만 아니라 박지성, 이영표, 기성용, 차범근 등

세계적인 선수를 여럿 배출했지요

우리가 일본에 견줄 만한 시스템을 갖추기만 하면

일본보다 훨씬 축구 강국이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해 보이지요

 

아무튼 이번 카타르 월드컵 16강에서

승부차기로 패배한 일본 선수들은 크나큰 아픔을 맛 보았지요

일본은 크로아티아와 16강전에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1-3으로 패했어요
크로아티아의 골키퍼 리바코비치는

일본의 1, 2, 4번 키커로 나선 미나미노, 미토마, 요시다의 슛을

모두 막아내며 8강 진출을 이끌었지요

일본의 미나미노, 미토마, 요시다 세 선수는

평생 잊지못할 참담함을 맛 보았어요

 

월드컵 경기에서 숨 가쁜 패스로 적진을 휘저으면

귀를 찢는 관중 함성이 파도를 치고

골이 터지든 빗나가든 정신이 먹먹하지요

아차 하면 순간을 놓치기 십상이지요

중계 캐스터와 해설자도 하이 데시벨로 소리를 지르지요

그러나 승부차기나 페널티 킥(PK)은 다르지요

주심 휘슬이 울리면 이쪽도 저쪽도 일순 고요하게 숨을 멈추게 되지요

한 점 차로 승패가 갈릴 땐 더욱 그렇지요

8강, 4강으로 좁혀가는 경기라면 세계 축구 팬들이 마른 침을 삼키게 되지요

 

10일 새벽 4강 티켓을 놓고 숙적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붙었어요

결승전에 버금가는 빅 매치였지요

새벽 시간 TV 앞을 지킨 국내 팬들도 많았어요

프랑스가 한 점을 먼저 넣은 뒤 동점이 됐고,

다시 프랑스가 2대1로 앞섰지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잉글랜드에 구사일생 할수있는 절호의 PK 찬스가 찾아왔어요

키커는 손흥민의 ‘토트넘 절친’ 해리 케인이었지요

결과는 공이 골대 위 하늘로 날아가는 어이없는 실축이었어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는 말이 실감났지요

케인은 같은 경기에서 첫 번째 PK를 성공시켜 환호에 휩싸였다가

두 번째 찬스에 ‘홈런볼’을 차버린 뒤 고개를 떨궈야 했어요

그때 케인 표정이 너무도 참담했지요

평생 처음 당하는 대(大)실패를 겪은 것처럼

얼굴이 일그러졌고 무릎이 꺾였어요

패배한 경기 뒤 케인은 “책임을 통감한다”

“내가 안고 살아가야 한다”고 했지요

 

그러나 ‘세계 PK 실축 톱10′ 명단을 보면

몸값 비싼 선수들이 수두룩 하지요

한 사이트는 네이마르 7개, 호날두 18개, 메시 22개로 집계했어요

한 경기에서 PK를 세 번 실축한 아르헨 선수도 있었지요

골대 맞히고, 하늘로 날리고, 골키퍼에게 안겼어요

그탓에 10년 동안 대표팀에 얼씬도 못했지요

2002년 우리가 이탈리아와 붙었을 때 실축했던 선수는

마지막에 ‘극장골’로 만회했어요

이번 월드컵에서 가나 선수가 실축하자 일곱 살 딸이 실신했다고 하지요

 

이론상 PK는 들어가야 하지요

공과 골키퍼 거리가 11m,

공이 골라인을 넘는 데 0.4초,

반면 골키퍼가 몸을 날리는 시간은 0.6초쯤 된다고 하지요

보통 득점률은 80%쯤인데, 승패가 걸리면 44%에 불과하다 하네요

이건 기술이 아니라 멘털이지요

중압감이 살인적이라 하지요

그러나 실수가 있기에 인간이고, 실수도 경기의 일부이지요

그렇다고 주홍 글씨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

선배 웨인 루니는 케인에게 “고개를 들어라, 자랑스럽다”고 했다는데,

루니도 실축이 12개나 되지요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케인 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참담함을 주었지만

그에게는 후배 선수들에게 실축을 이겨내는 용기를 보여야 하는,

축구보다 중요한 임무가 생긴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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