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청상과부 심실이

써~니 2023. 4. 20. 15:35

마흔다섯살 먹은 과부 ‘심실이’는 못 볼 걸 봤다.

마실 가서 밤늦도록 길쌈을 삼다가 이경 무렵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갓집

덕주네 봉창 앞에서 발걸음이 멎었다.

동갑인 덕주 어미의

자지러지는 소리와 덕주 아비의 가쁜 숨소리가

봉창으로 터져 나왔다.

처마 밑

발디딤 위에 올라 봉창 구멍에 눈을 댄 심실이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롱불을 밝혀 놓은 채

시커먼 양물을 곧추세운 덕주 아비는 덕주 어미를 엎었다 뒤집었다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쉼없이 절구질을 해댔다.

몸이 불덩어리가 된

심실이는 집으로 돌아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도

열이 식지 않았다.

끊임없이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과부 심실이의

한숨은 깊어 갔다.

돌이켜 보면

자기 신세가 한스럽기만 하다.

열여섯에 시집와 보니,

세살 아래 신랑이란 게 툭하면 베개를 들고 시어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2년쯤 지나자

손자 보겠다고 보채는 시부모 성화에 열다섯

신랑은 치마를 들추고

번데기만 한

고추를 깝죽거리다가 심실이의 몸만 달궈

놓고 픽 고꾸라졌다.

 

나이를

먹어 가며 겨우 신랑 행세를 한다 싶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시름시름

앓던 신랑이 이승을 하직해 버렸다.

청상과부가 된

심실이는 시부모 모시고 살다가 작년에야 시부모 상을 탈상하고

혼자가 되니 잃어버린 인생이 서럽기만 하다.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뒤척이는데 닭장에서 닭들이

난리를 쳤다.

족제비가

왔는가 싶어 문틈으로 내다보니 동네 젊은

것들이 닭서리를 하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심실이는

주저앉았다.

어떤 놈들인지

짐작은 갔지만 동네 요란하게 해 봤자 “저렇게 드세니

박복하지”라는 수군거림만 돌 게 뻔했다.

이튿날

심실이는 저잣거리에 있는 매파를

찾아갔다.

매파 앞에서

심실이는 정숙한 과부가 지나가다 들른 양 옷섶으로

짐짓 눈물을 닦아 내며 흐느꼈다.

“과부 혼자 산다고

사람들이 업신여겨 동네 젊은 것들이 월담을 해서 닭을 잡아가지 않나,

우리 논 물꼬를 터서 자기네 논에 물을 대지 않나….”

매파는

제 발로 찾아온 심실이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좋은 서방감이 있네.

그 사람이

안방을 지키면 자네를 업신여길 사람은

없을 걸세.”

이튿날

심실이는 매파 방에서 냉수 한그릇 떠 놓고

혼례를 올렸다.

허우대가

멀쩡한 초로의 서생이었다.

그날 밤

심실이는 멱을 감고 30여년 전 시집올 때 해 온 비단

이불을 안방에 깔았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인가.

이놈의 서생이 고자가 아닌가.

 

날이

밝기도 전에 심실이는 매파에게

달려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매파 왈,

“아니, 자넬 업신여기는 사람이 벌써 나타났던가?

그 사람 정도면 누구도 함부로 못할 텐데….”

매파의 말에

말문이 막힌 심실이 모기소리로,“안방만 지키면

뭐한다요.

​가시버시로

살다보면 필시 부부싸움을 할 건데, 그것은

무엇으로 푼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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