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장인 될 놈

써~니 2023. 4. 18. 18:07

어느날 오 진사를 찾아온 노스님

보물상자 묻힌 곳을 알려주는데…



 오 진사네 집에 노스님이 찾아왔다.
오 진사는 노스님을 사랑방으로 모셔 “나를 찾는 이유가 뭐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 진사 나리께 금은보화를 안기고 소승도 구전을 좀 뜯어

비 새는 암자 지붕이나 손보려고 합니다.”

오 진사가 바짝 다가앉았다.

 누가 들을 새라 문을 휙 열어본 후 노스님이 한 얘기는 이렇다.

 15년 전, 어느 날 밤. 노스님의 암자에 피투성이가 된 털보가 기어오다시피 들어와 픽 쓰러졌다.

그의 옆구리는 칼에 찔려 유혈이 낭자했다.

첩첩산중 음각골 산적들의 산채를 관군이 기습해 산적들은 풍비박산,

산적 두목도 칼을 맞고 암자까지 도망쳐온 것이다.

노스님이 죽을 끓여주고 약을 달여줬지만 그해 가을을 못 넘기고 산적 두목은 죽었다.

그가 남긴 유언을 노스님은 가슴에 새겨뒀다.

 산적 두목이 보물 상자 묻어둔 곳을 노스님에게 알려주고 숨을 거둔 것이다.

오 진사가 “그곳이 어디요?” 묻자 노스님은 “약정서가 먼저요. 나무아미타불~”

  약정서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발굴하기까지의 모든 비용은 오 진사가 부담한다.

발굴한 보물 상자는 오 진사와 노스님이 반반으로 나누어 갖는다.’

 오 진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 보물을 몽땅 가질 수 있을 텐데 어찌하여 나에게…?”

노 스님이 “발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요. 소승이 무슨 돈이 있겠소이까.”

 이튿날, 오 진사는 노스님을 따라나섰다.

 노스님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소승이 음각골 산채로 갔더니 관군들이 초소로 쓰고 있지 뭡니까!

보물 상자는 산채 부엌 아궁이 밑에 깊이깊이 묻혀 있는데….”

 뒤따라오던 오 진사가 “지금도 관군들이 지키고 있소?”

“아니요, 산적들의 명맥이 끊어져 그들은 철수했다오.”

 오 진사가 흥분하며 “우리 집 하인들을 데려와 아궁이를 파면 될 거 아니오.

” 노스님이 “빈집이라면 벌써 이 소승이 팠겠지요.

관군들이 떠나며 그 집을 농사꾼 민 서방에게 몇 푼 안 받고 팔았지 뭡니까.

소승이 민 서방을 만나 이 터에 절을 짓겠다고 집을 팔라 했더니 값을 엄청 부르네.”

 오 진사가 눈을 크게 뜨고 “음각골 민가놈이라니! 코밑에 검은 점이 달린 놈 아니요?”

노스님이 놀라자, 오 진사는 “바로 내 장인 될 놈이요. 킬킬킬.” 노스님이 놀라 “장인 될 놈?”

 두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민 서방이 사는 산채에 다다랐다.

민 서방이 나오자 오 진사가 다짜고짜 “민가야!

여기 스님이 네 집터에 절을 짓겠다니 천냥만 받고 집을 비워라.”

 민 서방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이천냥?” 민 서방이 또 고개를 젓자

“야 이 사람아! 그 돈이면 저잣거리의 기와집을 살 수 있어!”

 끝내 오천냥에 합의를 봤다.

이튿날, 민 서방은 삼천냥만 받고 오 진사네 별채에 이천냥에 인질로 잡혀 있는

열세살 딸과 마누라를 데리고 나갔다.

 노스님과 오 진사가 곡괭이로 아궁이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보물 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옆 아궁이를 파도 마찬가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오 진사가 노스님을 쳐다봤다.

노스님이 “산적 두목이 유언을 할 때 깊이깊이 묻었다 합디다.”

 삼일째, 열두자 깊이까지 팠지만 못대가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마침내 노스님이 사또 앞에 끌려오고 민 서방도 잡혀왔다.

사또의 문초가 이어지다가 민 서방네 모녀가 인질로 잡혀 있었던 연유를 민 서방이 설명했다.

 민 서방 마누라가 황달로 사경을 헤매자 민 서방이 오 진사에게 급전을 얻어 의원을 찾았다.

오백냥을 빌렸던 게 이자가 붙어 이천냥이 되자 오 진사는 열세살 민 서방 딸을 데려가 별당에 가뒀다.

 민 서방 마누라가 울면서 아직 어린 태를 못 벗었으니

그믐날까지 기다렸다가 그때까지 이천냥을 못 갚으면 자기 딸을 첩실로 삼아도 좋다고 했던 것이다.

 사또가 노스님에게 물었다. “산적 두목의 유언이 사실이렸다?”

“그러하옵니다. 아궁이 밑에 깊이깊이 묻었다 했습니다.” 마침내 사또가 판결을 내렸다. “

모든 거래는 합법적이다. 오 진사는 땅끝까지 파들어 가렸다.”

 오 진사는 “으악~” 비명을 질렀고,

노스님은 눈을 감고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민 서방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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