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판서는 만석꾼 부자에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들이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지만, 모든 걸
제쳐 두고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열일곱 살 난 외동아들 면이다.
면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훤했다.
김판서 집에 매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고관대작의 딸들이
줄줄이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김판서는 죽마고우였던 친구
이초시와 혼약을 해놓은지라 모든 청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판서 부인은 달랐다.
“대감, 젊은 시절에 한 혼약을
정말 지킬 셈입니까?
대감 친구는 이미 죽었고 그 집은 몰락해
우리 면이가 그 집 딸과 혼례를 치른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요.”
그러나 김판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인, 우리의 혼약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친구가 죽고 집안이 몰락했다고
혼약을 파기하면 그거야말로 웃음거리요.”
“대감, 허나….” “물러가시오. 부인.”
김판서 부인은 안달이 나 면이를 붙잡고
설득시켜보려 했지만 면이 역시 초지일관이었다.
“어머님, 아버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해 가을 신부집 마당에서 혼례를 올렸다.
며칠 후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본가로 신행을 왔다.
이초시의 딸은 박꽃 같은 인물에
아버지 인품을 물려받아 반듯하고 조신했다.
김판서 부인은 눈에 불을 켜고 신부를
노려보며, 입가에 알지 못할 미소를 흘렸다.
본가에서의 첫날밤, 합환주를 마신 면이는
촛불을 끄고 열여섯 신부의 옷고름을 풀었다.
신부집에서 몇번 치른 일이라 면이는
능숙하게 겹겹이 입은 신부의 옷을 벗기고
올라가 양물을 옥문 깊숙이 넣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부가 요분질을 하는 게 아닌가.
남자의 흥을 돋우려고 엉덩이를 돌리는
요분질은 색주가의 기녀들이나 하는 짓인데,
. 면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받고
방을 박차고 나왔다. 이튿날 아침,
신부는 쫓겨서 친정으로 돌아갔다.
3년의 세월이 흘렀다.
급제를 한 면이는 장가도 가지 않고
일부러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함경도에서
일하며 악몽을 잊으려 애쓰다가 김판서가
아파 누웠다는 소식을 받고 한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김판서의 병환이 가벼워서
문안을 드리고 나와 3년 동안 잠가뒀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금침을 깔고 누웠다.
“앗! 따가워.”3년 전 신부가 누웠던
요 속에서 나온 바늘이 다섯 개도 넘었다.
문득 뭔가 짚이는 게 있어
침모에게 가서 목에 칼을 들이대자,
“아, 안방마님이 시, 시켜서….”
그 길로 면이는 신부집으로 달려갔다.
친정으로 쫓겨 와 눈물로 세월을 보내던
신부가 작년에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는 소식이 들렸고,
통곡하던 면이도 그 감나무에 목을 매
짧은 생을 마감하고 신부 곁으로 갔다.
'야담, 야설, 고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둑도 감동하게 한 선비 (0) | 2021.07.21 |
---|---|
여승(女僧)은 춤추고 노인은 통곡하다 (0) | 2021.07.21 |
홑치마 입은 과부 허벅지 (0) | 2021.07.21 |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0) | 2021.06.28 |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0) | 2021.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