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의좋은 형제 이조년(李兆年)

써~니 2022. 4. 15. 17:55

 

 

고려 말엽 충혜왕때의 학자이자

명신인 이조년(李兆年 1269~1343)은 호를

매운당(梅雲堂)이라 했는데 유명한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의 작가 이기도 하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그에게는 형이 넷이 있었는데 백년, 천년,

만년, 억년이다. 소년시절 하루는 형 억년

과 길을 가게 되었다. 지금 서울 근교인

한강가의 길을 가는데 우연히 길가에서

금덩이를 주웠고 크게 횡재를 한 형제는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넉넉치 못한 살림이고 식구가 많은 형편인데

금덩이를 줍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일확천금의

횡재를 만난것이다. 억년과 조년은 기쁨의 길

을 재촉하였고 곧 양천나루를 건너게 되었다.

지금 한강의 하류로 행주산성 못미처이다.

 

그 시절은 양천현(서울시 양천구)관활이었다.

양천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가던

조년은 문득 금덩이를 강물속으로 던져 버렸다.

깜작놀란 억년이 물었다."아니 왜 그래? 어떻게

된거야" "형님! 금덩이를 버리고

나니 내 마음이편해졌어요."

 

"금덩이를 주워 형님과 나눠갖고 난후 줄곧 욕심

이 솟구쳐 마음이 편하질 못했죠. 형님이 없었더

라면 금덩이 두개를 몽땅 내가 가질 수 있었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자꾸 형님이 원망스러웠고

심지어 형님이 가진 그 금덩어리를

뺏고 싶은 충동까지 생기더라

니까요." 우리 형제가 우애 좋기로 동네에 소문이

나있는데 갑자기 금덩어리로 해서 원수가 될 것

같으니 옛사람 말이 거짓이 아니더군요."

 

 

"황금을 요물이라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버렸지요.

버리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편하답니다." 아우의 말

을 들은 억년도 나도 맘 속으로 너와 똑 같았다.

금덩어리로 해서 자칫 우리사이에 금이 갈 뻔 했구나."

라고 말하고는 금 덩어리를강물속으로 던져 버렸다.

 

후에 사람들은 이 양천나루를 투금탄(投金灘)이라 했다.

금덩이를 던진 여울이란 뜻이다. 뒷날 조년은 성산군(星

山君)에 봉해질 정도로 크게 현달하였고 형님 네분도

높은 벼슬에 올라 국가 발전을 위해 많은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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