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룻터에서 생긴일
이화댁에 마음 있는
소장수방 열쇠 전해주고는 술 퍼마셔
늦은밤 방으로 가다 열린 문 보고회심의 미소 지으며 들어가는데
…
석양이 떨어지며 강물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둠살이 스멀스멀 내려앉는 나루터 주막은 길손들로 들끓고 부엌에서는 밥 뜸 드는
김이 허옇게 쏟아지고 마당가 가마솥엔 쇠고깃국이 설설 끓는다.
내일 채거리장을 보러 온 장돌뱅이들, 대처로 나가려는 길손들, 뱃길이 끊겨 발걸음을 멈춘
나그네들은 저녁상을 기다리며 끼리끼리 혹은 외따로 툇마루에 걸터앉거나 마당 한복판
평상에 앉거나 마당가 멍석에 퍼질러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검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빠끔히 내민 여인이 사뿐사뿐 남정네 냄새 가득한
주막으로 들어서더니 장옷을 벗어 안방에 던져놓고 팔소매를 걷어붙인 채 부엌으로 들어갔다.
주모에게 인사할 사이도 없이 상을 차리느라 두손이 보이지 않는다.
이화댁은 병이 깊은 친정어미의 문병을 가려고 새벽 일찍 집을 떠나와도 나루터까지 오면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하룻밤 유숙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노자를 아끼느라 주막 일손을 거들어 주고 안방 주모 곁에서 새우잠을 자다
이튿날 꼭두새벽에 친정으로 향했다.
부산하게 저녁 식사를 치르고 나자 술판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화댁이 여기저기 술판을 돌며 안주를 갖다 주고 막걸리 호리병을 채워 주자
취객들이 이화댁을 작부 취급했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이화댁은 서른이 안 됐지만 자식 셋에 멀쩡한 남편이 있는 몸이고, 친정어미
병문안 가는 길이라 수심이 가득한데 취객들이 집적대니 짜증이 온몸에 덕지덕지 붙는다.
특히 13호 객방 손님이 집요했다.
모든 술손님이 마당에서, 마루에서, 평상에서 술을 마시는데 나잇살이나 먹은 선비는
구석진 자신의 객방에서 술을 시켜 이화댁이 술병을 들고 갈 적마다 노골적으로 손목을 잡으면서
“색시, 나 좀 살려줘”
한다.
이화댁이 쓴웃음을 지으며
“나도 이 집 손님이에요”
라고 쏘아붙이고 돌아 나오자
“어느 방에 유하시오?”
하며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또 한사람, 턱에 수염이 무성하고 어깨가 떡 벌어진 소장수가 장돌뱅이들과 평상에 퍼질러 앉아
끝없이 막걸리를 퍼마시며 지나다니는 이화댁 엉덩이를 툭툭 쳤다.
이화댁이 뒤뜰 우물가 달빛 아래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소장수가 구렁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엽전 주머니와 자기 방 열쇠를 이화댁 무릎위에 살짝 놓고 가는 것이 아닌가.
달이 중천에 올라왔을 때 마지막까지 술판에 붙어 있던 소장수가 일어서 제 방으로 갔다.
바깥 열쇠가 열려 있는 걸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들어가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지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이화댁(?)을 끌어안았다.
“누구야?!”
소장수의 벼락고함에
“당신은 누구야?!”
누군가 찢어지는 소리를 질렀다.
“퍽퍽… 꽝꽝.”
“사람 살려….”
주모와 손님들이 초롱불을 들고 소장수의 방문을 열었을 때 희한한 풍경이 펼쳐졌다.
벌거벗은 소장수가 역시 벌거벗은 피투성이 늙은 선비를 짓이기고 있었다.
소동을 치고 나니 부옇게 날이 밝았다.
입술이 당나발처럼 부어오른 선비가 겨우 입을 놀린다.
“그년이 생긋이 웃으며 열쇠를 던져 주기에 당연히 그년의 방 열쇠인 줄 알았지.”
그 시간, 이화댁은
벌써 첫배로 강을 건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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