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의상대사와 천등산 미녀

써~니 2023. 2. 5. 15:32

 

의상대사와 천등산 미녀


신라 문무왕 때의 높은 스님 의상대사가 천등산
깊은 골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무렵의 일 입니다.
 어느 날 저녁. 의상 스님이 천등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앉아 염불을 외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 여인은 몸 뒤에서 후광이 내비쳤습니다.
 의상의 젊은 가슴은 갑자기 두근거렸습니다.
 "누구십니까?"

 "저는 천제의 명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여인입니다.
 부족하지만 스님의 반려가 되어 섬기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습니다.
의상 스님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렸습니다.
의상은 믿음의 형인 원효대사가
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불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여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그래서 의상은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나는 아직 수행하는 몸입니다.
그대와 인연을 맺기 어려우니 물러가시오!"

"아무리 수행중이라도 스님과 저는
남자와 여자 사이입니다
. 젊은 우리들이 사랑을 맺은들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저의 이 애달픈 가슴을
스님의 우람한 팔로 힘차게 껴안아 주세요."
 그러면서 여자는 막무가내로 파고 들었습니다.
의상은 황급히 여자를 밀어냈습니다.
 "안됩니다. 수행을 방해하지 마세요."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으나
 의상스님은 어지러웠습니다.
여자의 짙은 살 냄새와 농익은 아름다움
 강하게 부딪쳐 왔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 옆에서 바위 위에 불을 켜고
 음식 시중이라도 들게 해 주세요."
 의상 스님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밤의 장막이 산기슭을 덮었습니다.
하늘과 땅이 칠흑의 어둠으로
휩싸일 때가 돌아 왔습니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여자의 후광이
 등불처럼 바위 위를 비쳤습니다.
 의상은 그 하늘의 등불로 불경을 읽고
여자가 갖다주는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으로 어느 날 원효대사가 찾아왔습니다.
 "형님, 저는 매일 밤하늘 선녀의 도움으로
 저 바위 위에 등불을 켜고, 천상의 음식을
 먹으면서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의상은 그렇게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밤에는 여자가
등불도 안 켜고 음식도 나오지 않았습니
. '이상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의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원효대사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등불은 안 켜지고
천상의 음식도 나오지 않을 걸세.
난 이만 가보겠네. 잘 있게, 동생!"
 "형님, 오늘 밤은 좀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이 세상에 그런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다고."
 원효대사는 의상스님을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곧 여자가 음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의상이 원망하듯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오는 길에 머리 여덟 개 달린 신이
 길을 가로막고 못 가게 하잖아요.
그래서 늦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의상은 여자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깨달았습니다.

"으흠, 그랬었구나!" 여자는 요괴였습니다.
불도가 깊은 원효대사 앞에는
감히 나타날 수 없었으나 대사가 가버리자
 의상을 유혹하려고 예쁘게
 꾸미고 나타난 것입니다.

 '나는 아직 수행이 부족하다.
 원효 형님에 비하면 발 밑에도 못 간다.
 요괴 하나 꿰뚫어보지 못하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머리 여덟 달린 신이란 요괴 자신이고,
그 앞을 가로막은 것은 원효 형님이었다.

 의상은 그 후부터 깊이 뉘우치고 삿된 욕심과
오만을 엄하게 누르는 수행을 했습니다.
경상북도 예천에 있는 천등산(天燈山)이란
 산 이름은 이때 의상스님이
하늘의 등불 아래에서 수행했기에
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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