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은뱅이를 목마 태운 당달봉사
두사람은 서로에게 눈과 발이 돼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데…
저잣거리 앉은뱅이가 두팔을 발 삼아
이 가게 저 가게를 호시탐탐 기웃거렸다.
진열대 아래 납작 엎드렸다가 가게 주인이 한눈파는 사이
얼른 한손을 올려 떡도 훔치고 참외도 훔쳤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들키는 날이면
돼지오줌통 축구공처럼 발에 차여
떼굴떼굴 굴러 나가떨어 진다.
공짜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잔칫집도 빨리 가야 얻어먹는다.
앉은뱅이가 두팔로 아장아장 달려가봐야 품바꾼들이 이를 쑤시고 나올 때 들어가니 허드렛일 하는 여편네들에게 구박만 잔뜩 먹기 일쑤이다.
어느 날, 맨 꼴찌로 들어간 이진사네 잔칫집에서
겸상을 받게 되었는데 마주앉은 사람은 당달봉사다.
가끔 만나는 사이라 젊은 당달봉사가 먼저
“영감님, 오랜만이구먼요” 인사를 건네자,
앉은뱅이가 “자네도 오랜만일세” 화답을 했다.
이때 노마님이 뒷짐을 지고 손자며느리
잔치 뒤끝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통시(‘뒷간’의 방언) 옆에 쪼그리고 앉아
걸신들린 듯 퍼먹어 대는 당달봉사와 앉은뱅이를 보고 한마디 한다.
“품바꾼들 떠난 지가 언젠데 자네들은 이제야 먹고 있나 그래?”
입놀림이 잽싼 앉은뱅이 영감이 냉큼 받아 답한다.
“노마님, 축하드립니다요. 손자며느님이 얼마나 예쁘십니까?
설거지하는 판에 저희가 이렇게 잔칫상을 받아들고 있는 것은….”
“알겠네. 걸음이 늦어서지.”
젊은 당달봉사도 끼어들었다.
“노마님, 제 무릎 까진 것 좀 보십시오.
발을 헛디뎌 그만 다리에서 떨어져….”
노마님이 혀를 끌끌 찼다.
“자네 둘은 바보 멍청이야.
영감은 눈이 밝고 장님은 젊어서 다리가 튼튼하잖아.
둘이 한몸이 되면 잔칫집에도 가장 빨리 가서
고기 한점이라도 더 먹을 텐데….”
앉은뱅이와 봉사는 깜짝 놀라 무릎을 ‘탁’ 쳤다.
당장 젊은 봉사가 앉은뱅이를 달랑 들어올려 목마를 태우고
마당을 한바퀴 돌았다.
둘은 노마님에게 몇번이나 고맙다는 절을 하고 잔칫집을 나섰다.
앉은뱅이 영감을 목마 태운 젊은 당달봉사는 길잡이 지팡이를
개울 속으로 집어던지고 앉은뱅이가
“우현, 좌현, 똑바로…” 안내하는 대로 성큼성큼 걸었다.
두사람은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항상 남의 무릎 아래만 보고 다녔던 앉은뱅이 영감은
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칠흑처럼 깜깜한 세상을 더듬거리던 당달봉사 역시
세상이 훤해진 듯 서슴없이 걸었다.
다섯달이 지난 어느 날, 이진사네 노마님이 이승을 하직해
장례를 치렀다.
당달봉사와 앉은뱅이는 품바꾼들이 오기도 전에
음식상에 막걸리 주전자도 받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앉은뱅이 영감이 한숨을 ‘푸~’ 쉬더니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한평생을 살 수는 없어!”
봉사가 한마디했다. “아니면?”
칠일장을 끝내고 이진사가 맏상주가 되어
만장을 휘날리고 곡소리를 길게 빼며 상여가 나갔다.
십리나 이어진 상여 행렬 맨 끝엔 품바꾼들과 앉은뱅이 당달봉사도 끼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이진사네 일가친척은
산에 가서 삼우제를 지내고 내려왔다.
후덕하고 인자했던 노마님의 죽음을 하늘도 슬퍼하듯
추적추적 밤새 비가 왔다.
그날 밤, 소쩍새 울음소리만 울리는 깜깜한 노마님의 묘지에
두사람이 다가와 봉분을 파헤치고 관을 열었다.
관 속에서 금비녀, 옥팔찌, 백금 목걸이, 은수저 등이 쏟아져 나왔다.
보물자루를 품에 안고 앉은뱅이가 나직이 말했다.
“으흐흐~ 이놈아, 빨리 목마를 태워라.”
앉은뱅이를 목마 태운 봉사가 힘껏 내달렸다.
그런데 웬일인가.
가늠해둔 소나무 가지에 앉은뱅이의 이마가 박혀 “꿱!” 즉사하고 말았다. 봉사는 내달리던 걸음을 갑자기 멈추지 못해 가늠하지 못했던
낭떠러지로 떨어지며 “으아아악~” 비명이 빗소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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