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인정많은 수월댁

써~니 2023. 4. 7. 11:58

인정많은 수월댁


조실부모하고 장가도 못 간 채 약초 캐고 산삼도 찾아 산을 헤매는 두 형제는

앞집 수월댁을 누님이라 부른다.
노총각 둘이 사는 집이라고 수월댁은 김치다 반찬이다 수시로 갖다 주고

때때 로 쌓여 있는 빨래도 해 주고 바느질도 해 준다.
두 형제도 산삼이 라도 캐서 한약방에 팔고 나면 경쟁적으로

박가분이다 방물이다 옷감 등등을 사서 수월댁에게 보답했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동생은 산에 가고 형은 발목을 삐어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수월댁이 죽을 쒀 들고 왔다. 발목을 주물러 주던 수월댁이 곁눈질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형의 하초가 차양막 지주처럼 빳빳이 곧추선 게 아닌가.
인정 많은 수월댁은 나이 찬 총각이 기운은 용솟음치는데 장가도 못 간 것이 측은해

베푸는 김에 육보시도 하기로 했다.

산에 갔던 동생은 약재상에 가서 형을 위해 발목 부기가 빠지는

약을 사서 집으로 오다가 마당에서 걸음을 멈췄다.
수월댁의 신음 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온 것이다.
일을 마친 수월댁이 옷을 추스려 입고 서둘러 집으로 가며 웃었다.

“넘쳐서 그런지 토끼보다 더 빠르네.”

한데 아쉬움을 안고 자기 집으로 돌아가 안방 문을 연 수월댁은 소스라쳐 놀랐다.
그 사이에 먼저 달려와 안방에 숨어들었던 동생이 수월댁을 쓰러트린 것이다.
그 후로 수월댁은 틈만 나면 뒷집 형제에게 번갈아 육보시를 했다.

어느 늦은 봄날, 마루 끝에 걸터앉아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수월댁은 방으로 들어가 벌렁 드러누웠다.
저고리 속으로 고쟁이 속으로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몸이 근질근질했다.
그럴 때도 된 것이 노름꾼 남편이 멀리 원정 투전 간 지 열흘이 넘었고,

뒷집 심마니 형제도 며칠째 보이지 않는 것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든가.

뒷집 사립문 여는 소리에 봉창으로 내다봤더니 동생이 약초 망태를 메고 와

처마 밑에 던져 놓고 곧바로 앞집으로 달려왔다.

“누님 계시오. 더덕 좀 들어 보시오.”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방문을 닫고 바지는 내리고 치마는 올렸다.

뇌성벽력이 치는데, “누님, 안에 계시오?” 형의 목소리다.
형이 마루에 성큼 올라섰을 때 이럴 수가!

이번엔 노름꾼 남편이 삐거덕 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게 아닌가.

수월댁은 얼른 다듬이 방망이를 형에게 쥐어 주고 그의 등을 떼밀었다.
“우리 집에는 안 왔으니 다른 데 가서 찾아봐.”
형은 다듬이 방망이를 든 채 황급히 대문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안방에 들어와 앉자 뒤따라 들어온 수월댁은 다락을 열었다.

“이제 나와. 형을 돌려보냈으니.” 동생이 다락에서 나오자

수월댁은 손바닥으로 그의 등줄기를 때렸다.

“무슨 저지레를 했기에 형이 죽일 듯이 찾아다니나 그래.”

사색이 된 동생이 안방에서 나가자 진짜 내막을 모르는 노름꾼 남편은

빙긋이 웃으며 담뱃대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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