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서로 팔고 마시다
한양에 파락호(破落戶 ; 부랑자) 주오(朱伍)와
김삼(金三)이라는 자가 있었는 데,
먼저 주오가 말하였다.
"우리 나이가 40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아직
생업이 없으니 실로 세상사람들에게 부끄럽네.
술을 한 번 팔아봄이 어떠한가? 그리고 우리 둘
사이일지라도 맹세코 외상을 주지 말 것이며
외상 주는 것을 악귀 보듯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
"좋네."이내 주오와 김삼은 각자 술 한 동이씩을
마련해서 길가에 전을 벌이고 앉았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술손님이 들지 않던 차에,
마침 김삼에게 엽전 세 닢이 있는지라
그것을 주오에게 건네주고 술 한 잔을 사 마시니,
이윽고 한참 있다 주오 또한 그 돈을 김삼에게
주고 술 한 잔을 사 마셔,
이를 반복하며 술을 팔고 마셨다.
저물녘이 되자 주오가 말하였다.
"비록 너와 나 사이일지라도 외상으로 술을 준
적이 없었는 데, 술은 이미 바닥나고 돈은 겨우
엽전 세 닢일 뿐이니 어떤 놈이
우리 돈을 훔쳐갔는지 모르겠네."
둘은 이내 홧김에 술동이를 깨고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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