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뱃사공 아내와 뱃삯

써~니 2021. 8. 26. 12:10

뱃사공 아내와 뱃삯

 

 

청포나룻가에 단 두집이 살고 있었다.

뱃사공으로 한평생을 보낸 장노인과 농사짓는 허서방

내외는 한가족처럼 지냈다.

지난 어느 봄 날,

장노인이 고뿔을 심하게 앓아 허서방이 농사일을 제쳐 두고

장노인 대신 노를 저어 길손들을 도강시켰다.

 

그날 저녁, 허서방이

하루 수입을 장노인에게 갖다 줬더니 장노인은 허서방을 머리맡에 앉혔다.

장노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이제 목숨이 다했네.”
“어르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빨리 쾌차하셔야지요.”

“자네가 내 배를 계속 저어 주게나.

그리고 부엌 아궁이를 파 보게.”

장노인은 그날 밤 이승을 하직했다.

노인의 부탁도 있는데다 강 건너는 길손들을 외면할 수 없어

허서방은 날마다 노를 저었다.

 

하루는 노를 젓다가

문득 장노인의 말이 생각나 장노인 집 아궁이를 파 보았다.

거기서 나온 항아리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허서방은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고 항아리를 다시 묻었다.

금슬 좋은 허서방 내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운우의 정을 나눴는데, 요즘은 치마를 벗기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헝클어진 머리, 까맣게 탄 얼굴, 거친 손, 때 묻은 옷…. 허서방이 뱃사공이 되자

농사일은 아내가 도맡았기 때문이다.

허서방은 바람이 났다.

손님이 끊어진 저녁이면 강 건너 십리 밖에 있는 저잣거리로

나가 기방 출입을 하기 시작했다. 하얀 얼굴에 섬섬옥수로 따라 주는

약주를 마시며 허서방은 기생 치마폭에 싸이고 말았다.

어느 날. 새벽녘에야 집에 들어온 허서방은

“왜 이리 늦었냐”는 아내의 말에 말대꾸한다고 손찌검을 하며 집을

나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로부터 두어달이 지난 여름날 저녁.

마지막 길손을 건네준 허서방이 배를 댄 후 저잣거리 기생집으로

가려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저녁노을을 받으며 강 건너에서 배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

허서방은 배를 저었다. 저녁 햇살이 여인의 세모시 치마와 고쟁이에 파고들어

아랫도리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허서방의 하초가 불끈 솟았다.

배가 닿았다. 이럴 수가! 바로 아내였다.

아내는 작은 보따리 하나만 안고 배에 올랐다. 동백기름을 발라

흑단 같은 머리에 분을 바른 얼굴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어깨선이 잘 내려와

개미허리에 닿았다. 아무리 봐도 분을 떡칠한 기생보다 열배는 더 예뻤다.

아내는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노 젓기를 재촉했다.

“소첩은 이제 떠납니다.

부디 몸 성히 잘 사십시오.”“잠깐, 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려면 뱃삯을 내야지.”

“당신은

내 배를 수없이 탔지만 뱃삯을 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야 가시버시(부부)였으니

줄 일도 받을 일도 없었지만, 이제는 남남이니

당연히 뱃삯을 받아야지.”

그러자 아내는

“내 수중에는 한푼도 없으니 관가에 고발을 하든가 맘대로

하시구려” 하고 앙칼지게 말했다.

 

허서방은 “그럼 나도 예전처럼

임자의 배에 무임승선하겠소” 하고는 와락 마누라를 껴안고

나루터 풀숲에 눕혔다.

 

우르릉 쾅쾅 먹구름이

몰려와 장대비가 쏟아졌다.

허서방은

그날 이후 두번 다시 한눈을 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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