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발가벗은 동기가 품속에서
혼례 날짜가 아홉달이 남았는데
윤 도령은 그 전에 급제해
혼례식을 거창하게 올리겠다고
문중 재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삼시 세끼는 멀지 않은 집에서 하녀 삼월이가 날랐다.
저녁 나절 함지박에 저녁밥을 이고 온 삼월이가
윤 도령이 식사를 다 할 동안 툇마루에 걸터앉았다가
, 빈 그릇을 이고 집으로 가는데
콰르르 소나기가 쏟아졌다.
발길을 돌려 문중 재실로 돌아왔다
. 홑적삼 치마가 소나기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병아리 꼴이 됐다.
초여름이지만 비를 맞고 나니
추워서 와들와들 떨다가
윤 도령이 자리를 비켜주자
옷을 벗어 짜고 널었다.
방에서 발가벗은 채 홑이불로 몸을 감쌌다.
날은 저물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윤 도령이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삼월이는 기다렸다는 듯 아무 저항을 하지 않았다
. 이튿날, 윤 도령에게 저녁상을 날라주고
삼월이는 또 윤 도령 품에 안겼다.
며칠 후 매파가 울상을 하고
윤 도령 본가에 찾아와
약혼녀 어머니가 보낸 파혼 통보를 전했다.
약혼녀는 홍 대감의 무남독녀로
집안 좋고 조신하고 재주 있는 데다
자색까지 빼어나 일등 신붓감으로 정평이 났다.
홍 대감은 병석에 누워 골골하는 터라
모든 집안일은 안방마님 오전댁이 주관했다.
오전댁 한마디에
즉시 달려오는 매파가 여럿이었다.
오전댁이 고르고 골라
황 부자의 맏아들이 새로운 신랑감으로 떠올랐다.
허우대가 훤하고 착실해서
그 넓은 농로의 소작농들을
원성 없이 공평하게 잘 다뤘다.
또 저잣거리 요소요소의 가게들에서
빈틈없이 세를 받아 관리했다.
신랑감으로 손색이 없었다.
어느 날 황 총각이
저잣거리 가게에 새로 세 들어올 사람과
임대차 계약을 쓰고
세입자한테 이끌려 기생집을 가게 됐다
. 동기 하나가 기생이 된 첫날,
첫 손님이라며 황 총각에게 착 달라붙었다.
한량 세입자의 현란한 술자리 이끌림에
만취한 황 총각이 깨어났을 땐 동창이 밝았고
발가벗은 동기가 품속에서 쌔근거리고 있었다.
홍 대감 안방마님 오전댁의 살생부에서
황 부자의 맏아들은 빨간색 넉줄로 지워졌다.
서당에 새파랗게 젊은 훈장이 새로 부임했다
. 후리후리한 키에 손마디가 길고
얼굴이 창백한 스무살의 백면서생이었다.
학식이 높아 그를 시험하러 온 글깨나 한다는 유림이
코가 납작해져 돌아갔다.
어느 날 밤 몽당치마에 고쟁이
로 무릎만 살짝 덮은 처녀가
함지박에 산적과 갈비찜을 올리고,
손에는 호리병을 들고 왔다
. “소녀는 광식 학동집 안방마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서당 문을 열고
혼자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던 젊은 훈장이
어쩔 줄 몰라 뒤로 물러앉았다.
식은 밥을 찬물에 말아 먹으려던 훈장이
못 이기는 척 함지박에 젓가락을 댔다
. “먼저 목을 축이세요.”
하녀가 술 한잔을 따라 올렸다.
마주 앉아 있던 처녀가
어느새 훈장 옆에 달라붙어 술을 권했다.
하녀는 자꾸 붙으려 하고
훈장은 물러앉아
원래 두 사람이 앉았던 자리가 바뀌었다.
하녀가 덥다며 옷고름을 풀었다.
그때 벼락 고함이 터졌다.
“물러나시오!”
어떤 비 오는 날은
육덕이 풍성한 여인이 비를 좀 피해가자고 들어왔는데
, 홑적삼과 치마가 착 달라붙어
벗은 몸과 다를 바 없었지만
훈장은 본체만체했다.
과부 학부모도 유혹했지만
훈장은 요지부동이었다.
홍 대감의 안방마님 오전댁이 무릎을 쳤다
. 마침내 외동딸 배필을 정한 것이다
. 오전댁은 한평생 남편 홍 대감의 바람기에 시달렸다.
혼례 올린 지 3개월 만에
동기 머리를 올려주지 않나
, 집안의 침모·찬모·몸종 등
치마만 둘렀다 하면 노소를 가리지 않고 품에 안고
심지어 유모까지…
오전댁은 독수공방에 몸부림치던 지난 세월을 생각하며
지금도 이를 간다.
외동딸에게만은 아무 데다 휘두르는
수캐 같은 놈이 아닌,
다른 여자를 돌같이 보는 신랑을 구해주겠다고
이런 시험을 했던 것이다
. 윤 도령을 시험하려고
그 집 하녀를 매수한 것도 오전댁이었고,
황 총각을 떠보려고
세입자와 어린 기생을 매수한 것도 오전댁이었다.
오전댁의 무남독녀 외동딸과
여자를 돌같이 보는 젊은 훈장은
시월상달에 고을이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다.
훈장은 데릴사위가 됐다.
석달이 지나 오전댁이 딸에게 물었다
. “이것아, 입덧이 없니?
신 것이 먹고 싶지 않니?”
새 신부 딸이 신경질적으로 쏘아붙였다.
“엄마, 나를 돌같이 보는데 무슨 입덧이야!”
오전댁이 고자 사위를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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