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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옛날 우리가 살던 추억어린 사진

◈그옛날 우리가 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4.4 거리에서 파는 냉차 행상. 한 어린이가 시원한 음료수 한병으로 목을 축이는 중학생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1959년 1월16일 을지로2가에서 차량이 충돌해 길가 한가운데 나뒹굴고 있다. 1959년 1월6일 새해를 맞아 첫 출근하기 위해 열차편으로 상경한 근로자들이 서울역사를 나서고 있다. 1959년 3.1절을 맞아 공무원과 시민 학생들이 탑골 공원에 모여 기념식을 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 기념식을 마치고 학생들이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1959년 3월1일 3.1절을 맞아 기념식을 갖고 참가자들이 학생 밴드부를 선두로 종로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추억의 그시절 2021.04.03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우가네 막내인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라 세간이라고 받은 건 솥 하나, 장독 하나, 돌투성이 밭뙈기 그리고 철도 안 든 수송아지 한마리뿐이다. 먹고살 길은 산비탈을 개간해 밭뙈기를 늘려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소가 쟁기질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툭하면 큰집 어미 소에게 달려가는 수송아지를 키워 길들이는 일이 급선무다. 우 서방은 송아지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추수하고 난 남의 콩밭에 가서 낟알을 줍고 산에 가서 칡뿌리·마뿌리를 캐다 쇠죽솥에 넣었다. 그랬더니 송아지는 금세 엉덩짝이 떡 벌어지고 머리 꼭대기엔 뿔이 삐죽 올라왔다. 이젠 길을 들일 참이다. 큰집 형님 지시대로 냇가 모래밭에 소를 끌고 나가 쟁기를 씌우곤 형님이 앞에서 코뚜레를 잡고 우 서방이 뒤에서 쟁기를 잡..

요분질

김판서는 만석꾼 부자에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들이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지만, 모든 걸 제쳐 두고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열일곱 살 난 외동아들 면이다. 면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훤했다. 김판서 집에 매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고관대작의 딸들이 줄줄이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김판서는 죽마고우였던 친구 이초시와 혼약을 해놓은지라 모든 청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판서 부인은 달랐다. “대감, 젊은 시절에 한 혼약을 정말 지킬 셈입니까? 대감 친구는 이미 죽었고 그 집은 몰락해 우리 면이가 그 집 딸과 혼례를 치른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요.” 그러나 김판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인, 우리의 혼약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친구가 죽고 집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