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여승을 겁탈한 사연

써~니 2022. 9. 17. 12:19

 

여승을 겁탈한 사연...

  
황일석은 과거에 또 낙방하고 터덜터덜 한달 만에

 집으로 내려왔다.삽짝을 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고 고개 들어 집을 보니 초가삼간 지붕은
  썩어서 잡초가 우거졌고 마루짝은 꺼져 이빨이 빠질

 듯하고 기둥은 기울어져 집이 쓰러질 듯하다.


“아부지!” 삼남일녀가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남루한

 황일석의 두루마기에 파묻힌다. 부엌에서 뛰쳐나온

아이들 에미는 남편의 표정에서 또 낙방했다는

 사실을 읽고 털썩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몸 성히 다녀오셨어요?”

 하고 인사를 한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지 애비 두루마기를 잡고

 반가워서 야단인데 말뚝처럼 우두커니 선 황일석의

 두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황일석은 곰팡이 슨

 방으로 들어가 책을 한아름 들고 나와

 부엌 아궁이 앞에 쏟았다.

 


“여보! 이게 무슨 짓이오!” 몰래 흘린 눈물을

우물가에서 닦던 아이들 에미가 달려와 불붙기

 시작한 책들을 아궁이에서 끄집어내며 책망했다.

황일석은 “과거는 그만 볼 거요” 하며 부엌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남자가 한번 칼을 뽑았으면…

” 하는 부인의 당찬 말을 황일석이 가로챈다.

 

 “여보! 과거는 내게 넘지 못할 너무 높은 벽이오.

이제 부지런히 농사일에 매달려” 황일석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설움이 북받치는 듯

두발을 뻗고 엉엉 울었다.


그날 저녁 황일석의 상에 수삼을 넣은 닭백숙이

올라왔다. 황일석이 눈을 크게 뜨고 “여보!

이 보릿고개에 닭은 어디서 났소?” 하고 묻자

상 옆에 앉아 뼈를 발라주던 부인이 “식구들 입에

거미줄은 안 치게 할 테니

 당신은 열심히 공부나 하시오”

 

 

하며 오히려 안심을 시키는 게 아닌가.

그날 밤 아이들이 잠든 후 부부는 오랜만에

초가삼간이 흔들릴 듯 질펀하게 운우의 정을 나눴다.
며칠 후 황일석의 부인은 또 친정으로 향했다.

양식이 떨어질 때면 친정으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칠십리나 떨어진 친정에 다녀오려면 사나흘은

 걸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황일석의 부인은

 두세달에 한번씩 친정에 다녀올 때면 머리에

 무거운 쌀자루를 이고 오는 것이 아니라

치마 속에 전대를 차고 온다.
그해 초가을, 알성과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황일석은 부랴부랴 한양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덜컥 알성급제를 했다.

 

황일석이 어사화를 쓰고 말을 타고 금의환향하자

보릿고개에 쌀 한됫박 보태주지 않던 친척들과

 친지들이 모여들고 고을 원님도 마중 나와

 왁자지껄 잔치판이 벌어졌다.
사흘 동안 술독에 빠졌던 황일석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부인의 행방이 묘연했다.

백방으로 부인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황일석이 칠십리 밖 처가를 찾아갔지만 오두막집에

 혼자 사는 꾀죄죄한 장모는 사위가 급제한 사실도

모른 채 “걔가 우리 집에 다녀간 지는

 삼년이 넘었다네” 하는 게 아닌가.
 어느 날 황일석의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

거나하게 대작을 한 끝에 입을 열었다.


 “칠봉산 산속에 혼자 사는 심마니는

 산을 탔다 하면 산삼을 무더기로 캔다네.
 자네 부인을 찾으려거든 그리로 가보게.

소문이 돌고 돌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네.”
 이튿날 꼭두새벽에 칠봉산 속 심마니의 너와집을
  찾아갔지만 심마니만 있을 뿐 부인은 없었다.


 보름 후 고을 원님이 푼 포졸들이 성불사에서

 삭발을 하고 여승이 된 황일석의 부인을 찾아왔다.

그날 밤 황일석은 여승을 겁탈했다.
 황일석은 한평생 심마니와 관련된 부인의 행적을
  캐묻지 않고, 한번도 외도를 하거나 첩을 두지 않고,

오로지 부인과 원앙처럼 정답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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