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치마 밑으로

써~니 2022. 9. 26. 16:49

치마 밑으로 들어간

 

김장철이 다가오자 새우젓값이 뛰기 시작했다.

“허가가 황해 새우를 싹쓸이했다며?”

“새우젓값이 하늘을 찔러야 풀 모양이지.

마포나루의 새우젓 도매상들은

물건이 풀리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첫서리가 온 날 허항의

새우젓 배들이 마포나루에 들이닥쳤다.
이른 저녁, 명월관에 나타난 허항은

돈표를 방바닥에 펼쳐 놓고 명월관

대문을 잠그라고 큰소리쳤다.
“추엽이는 어디 있느냐?”
천하의 오입쟁이 허항이 주인 여자를 다그치자

허항이 명월관을 수시로 드나들었지만

추엽은 몸을 허락하지 않았다.

빼어난 미모에 기품을 갖춘 추엽은 집안이

망해서 비록 술을 따르는 신세가 되었지만

절대로 몸을 더럽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이 달아오른 허항과 그가 새우젓 선단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명월관 주인 여자의 담판이 불똥을 튀겼다.

그녀는 반색을 하며 진정부터 시켰다.

마침내 그날 밤,명월관 별채에 신방이

차려지고 허항은 추엽의 머리를 얹었다.

추엽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 단정하게

화장까지 마친 추엽이 전복죽을 끓여 왔다.

추엽이 상을 들고 나간 후 주인 여자가 들어와

이불을 젖히자 요 위에 새빨간 핏자국이 선명했다.

감격한 허항은 새우젓 백독이 추엽이

머리 얹는 데 날아갔지만 괘념치 않았다.
허항은 아예 명월관 별채에 살림을 차리고

몇날 며칠 추엽을 끼고 살았다.

추엽은 언제나 점심을 먹고 나면 명월관을

빠져나갔다가 저녁나절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행선지를 묻자 깊은 한숨을 쉬며 연로하신

어머님이 편찮아서 하루 한번씩 들른다고 했다.

명월관 별채에 쳐 박혀 있는 허항에게

마포나루에 머물고 있던 집사가 찾아왔다.

새우젓 시세가 떨어져 뱃삯을 못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허항이 남은 돈표를 들고

명월관을 나서는데 안주인이 “술값·해웃값을

깨끗이 정리하라”며 앞을 막았다.

한달 반 만에 새우젓 삼백독이 추엽이

치마 밑으로 다 들어갔다.

마포나루에 가서 비용을 정산하고

뱃삯으로는 남은 새우젓을 현물로 주고 나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밤에 명월관으로 돌아오자

마당쇠는 옷가지를 싼 보따리를 허항에게

안겨주고는 대문을 잠가 버렸다.

마포 주막에서 며칠을 보낸 허항은 추엽이

보고 싶어 점심나절 명월관 앞에서 몸을 숨겼다.

추엽이 나와서 아픈 노모가 누워 있다는

제 집으로 향했다. 허항은 추엽의 집을

알아 두기 위해 미행했다.

그녀는 명월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제집 골목의 아담한 기와집으로 들어갔다.

좀 있으니 사대부집 자제가 옥색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대문을 두드린다.

할멈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자

그는 성큼 들어갔다. 해가 서산에

걸렸을 때 장부가 그 집을 나와서

골목길로 사라지고 뒤이어 추엽이 나와서

명월관으로 향했다.

몸을 숨겨 바라보던 허항이

추엽의 집 대문을 두드리자

그 할멈이 나와 한다는 말이

“우리 아씨하고 선약을 했습니까?”

허항이 고개를 흔들자 “이달 아흐레와

열닷새, 이틀이 비었습니다.

시려거든 선약금을 내시지요.”

그곳은 노모 집이 아니라

추엽의 또 다른 업소(?)였다.

그동안 허항은 닳고 닳은 논다니

추엽에게 놀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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