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상사(腹上死) 이야기
천석꾼 부자 최참봉이 상처를 하고 3년 동안
홀아비 생활을 하다가 양자 내외를 세간 내보내고 새장가를 들게 되었다.
최부자네 안방을 차지할 삼십대 초반의 황간댁은 사슴 눈, 오똑한 코, 백옥 같은
피부에 앵두 입술로 자색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둥그런 턱 선과
넉넉한 인중, 넓은 이마 등 부귀영화를 타고난 인물이다.
고을이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는데
첫날밤에 최참봉이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집의 담 모퉁이 하나 고치는 일도
구곡암자의 영검도사에게 물어보고 실행에 옮기던
최참봉이 혼인만은 자기 뜻대로 한 것이다.
혼례식을 올리기 전 황간댁의 관상을 본 영검도사가
최참봉에게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 여자 배 위에서는 황소도 살아남을 수 없으니 부디 혼약을 파기하십시오.”
최참봉은 고개만 끄덕이고 결국 영검도사의 권고를
무시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다.
삼년상을 치를 동안 소복을 입은 황간댁은
쥐 죽은 듯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마침내 바깥출입을
하기 시작했는데 자색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저렇게 후덕해 보이는 여자가 남자 잡는 백여우여.”
“최참봉만 복상사를 한 게 아니라 저 여자가 첫 시집을 간
첫 신랑도 첫날밤에 복상사를 했다네.”
황간댁이 최참봉이 남긴 대궐 같은 기와집에
하인과 하녀들을 거느리고 조용하게 살며 최참봉의
횡사도 잊어 갈 즈음, 이번엔 황간댁 집 안팎 일을 총괄하던
훤칠한 집사가 안방에서 급사를 했다.
황간댁 배 위에서 복상사를 한 것이다.
얼마 후, 비단 장수가 대낮에 황간댁 안방에서 복상사를 했다.
소문이 널리 퍼져 아무도 황간댁을 넘보지 않았다.
집사도 하인도 없는 황간댁. 드넓은 기와집은 인적이 끊겼다.
어느 날 어디선가 흘러 들어온 집도 절도 없는 건달 노름꾼이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황간댁 대문을 두드렸다.
허우대가 멀쩡한 건달이 밤중에 찾아와
“부인의 한을 풀어드리려고 왔으니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제법 예를 갖추어 고개를 숙이자
황간댁은 눈물을 쏟으며
“제발 부탁이오니 돌아가 주십시오.”
건달은 막무가내로 안방으로 들어갔다.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는 황간댁을
건달이 등을 쓰다듬으며 껴안았다.
또다시 자신의 배 위에서 비명횡사하는 남자를 보기 싫어
한사코 치마끈을 풀지 않으려는 황간댁을 안고 건달이 쓰러졌다.
그날 밤,
건달과 황간댁은 온몸을 불사르며
격렬하게 운우의 정을 나눴다.
건달은 죽지 않았다.
발가벗고 꼭 껴안은 채 깜빡 눈을 붙이고 나니 동창이 밝았다.
건달과 황간댁은 또 한번 지축을 흔들었다.
건달은 이 집 대주가 되었고, 황간댁은
그를 하늘 같이 받들었다.
얼마 후 황간댁은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황간댁 사주팔자엔 배 위로 올라간 남자가 복상사(腹上死)하지,
하늘과 땅이 뒤바뀐 복하(腹下)에서는 남자가 죽는 법이 없었다.
황간댁은 여성상위 (女性上位)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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