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소금장수 한의사 이야기

써~니 2022. 11. 12. 16:40

 

소금장수 한의사 이야기




죽령을 넘던 순옥 어미는,

고갯마루 바위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단양 쪽에서 넘어오던 소금장수도,

소금 지게를 받쳐 놓고 담뱃대를 빼물었다.
순옥 어미가 물었다.

“어디로 소금 팔러 가시오?”

“정한 곳이 있나요.
이 마을 저 마을, 이 집 저 집 닥치는 대로 다니지요.”

주책없는 순옥 어미가 말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헛걸음할까 봐 일러 주는데,

우리 집은 들르지 마시오.
저기 아래로 내려가다가 개울이 합치는 곳에서,
왼쪽 오솔길로 쭉 올라가면,
솔숲에 박혀 있는 외딴집이, 우리 집이오.”

그때 산나물을 뜯으러 갔던 한 노파가 산에서 내려왔다.
“순옥 에미 아이가.어디 가는 길이고?”
“할매, 오랜만입니더.
단양에서 한의원 하는 먼 친척에게 약 지으러 가는 길이지요.

순옥이가 봄만 되면, 이유 없이 앓아눕습니다.”

“자네가 오늘 중으로 돌아오지 못할 텐데,몸 안 좋은 순옥이 혼자서….”

“중병은 아니라 배고프면 제 끼니는 찾아 먹습니다.”

소금장수는 슬며시 소금 지게를 지고 일어서,

풍기 쪽으로 내려갔다.
이 집 저 집 다니며 소금을 다 팔고 나서,

소금 지게는 숲 속에 감춰 두고,
개울에서 멱을 감고,
잔대를 몇 뿌리 캐서 품속에 넣고,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소금장수는,

순옥 어미와 산나물 뜯는 할머니로부터 얻은 정보를 되뇌었다.
‘집은 개울이 합쳐지는 곳에서 왼쪽 오솔길이라 했고,

이름은 순옥이라 했지.’

어둠살이 내리자 소금장수는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옥이 있느냐?”
소금장수가 사립짝에서 큰소리로 외치자, 순옥이가 안방 문을 열었다.
“누구세요?”
“단양 사는 한의원 아저씨다.

네 어미는 친척들과 만나 하룻밤 자고 온다며,
내 등을 떼밀어서 먼저 왔다.
진맥을 볼 테니 이리 와서 누워라.”

순옥이가 주삣주삣 소금장수 앞에 누웠다.
“올해 몇이냐?”
“열아홉입니더.”
진맥을 한다며 팔목을 만졌다가,

목덜미를 살며시 눌렀다가,
윗옷을 벗겨 놓고 등을 쓰다듬다가,
왼손으로 명치끝을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치마끈을 풀었다.
손바닥으로 배꼽 주위를 쓰다듬자,

순옥이 몸을 움츠렸지만,
한의원 아저씨의 호통에 다시 몸을 맡겼다.

소금장수의 손이 단전까지 내려가자,

순옥이의 몸은 뜨거워지고, 숨은 가빠졌다.

능글맞은 손가락이,

숲을 헤치고 옥문에 다다르자,
그곳은 벌써 흥건히 샘솟고 있었다.

“고름이 많이 찼구나.”
호롱불을 끄고 질펀하게 일을 치르고 나자,

사지가 나른하던 순옥이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한의원 아저씨의 처방대로,

닭을 잡아 잔대를 넣고 푹 고아,
둘이서 배 터지게 먹고 나서,
또 한번 일을 치뤘다.

이튿날 아침,

또 운우를 나누고 나자,
순옥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봄만 되면 도지는 순옥의 병은,

열아홉까지 시집도 못 가고,
남자도 못 본 상사병이었다.

소금장수는,

느긋하게 점심까지 얻어먹고,
또 한번 순옥이의 병을 고쳐 주고,
순옥 어미가 오기 전에 줄행랑을 놓았다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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