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박복한 과부 심실이

써~니 2022. 12. 24. 11:02

박복한 과부 심실이



마흔다섯살 먹은 과부
심실이’는 차마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아랫마을로 마실 가서 밤늦도록
길쌈을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갓집 '덕주네'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동갑내기인 덕주 어미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와 덕주 아비의 가쁜 숨소리가 봉창으로 터져 나왔다.

심실이는 처마 밑 섬돌위에
올라가 봉창 구멍으로 방안에 펼처진 광경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호롱불을 밝혀 놓은 채
시커머퉤퉤한 양물을 곧추세운 덕주 아비는
덕주 어미를 엎었다 뒤집었다
자유자재로 주무르며 쉼없이 절구질을 해댔다.
절구질... 또 절구질 ㅋㅋ


몸이 불덩어리가 된 심실이는
집으로 돌아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마셔도 열이
좀체로 식지 않았다.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
심실이의 한숨은 깊어만 갔다.

돌이켜 보니 자기 신세가 한스럽기만 했다.
열여섯살에 시집와 보니,
세살 아래인 신랑이란 게 툭하면 베개를 들고
시어머니 방으로 달려갔다.

2년쯤 지나자 손자를 보겠다고 보채는 시부모
열다섯 신랑은 치마를 들추고
번데기만 한 고추를 깝죽거리다가 심실이의 몸만 달궈 놓고
픽 고꾸라졌다.


나이를 먹어 가며 겨우
신랑 행세를 한다 싶더니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시름시름 앓던 신랑이
이승을 하직해 버렸다.


청상과부가 된 심실이는
시부모 모시고 살다가 작년에야 시부모 상을 탈상하고
혼자가 되니 잃어버린 인생이
서럽기만 하다. 아흐~~~ 내 청춘 돌려둬...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며
밤잠을 뒤척이는데 닭장에서 닭들이 난리를 쳤다.
족제비가 왔는가 싶어
문틈으로 내다보니 동네 젊은 놈들이
닭서리를 하고 있었다.

문을 박차고 나가려다가
심실이는 주저앉았다.
어떤 놈들인지 짐작은 갔지만 동네 요란하게 해 봤자
“저렇게 드세니 박복하지”라는
수군거림만 돌 게 뻔했다.


이튿날 심실이는
저잣거리에 있는 매파를 찾아갔다.
매파 앞에서 심실이는
정숙한 과부가 지나가다 들른 양 옷섶으로
짐짓 눈물을 닦아 내며 흐느꼈다.


“과부 혼자 산다고
사람들이 업신여겨 동네 젊은 것들이 월담을 해서
닭을 잡아가지 않나,
우리 논 물꼬를 터서 자기네 논에 물을 대지 않나….”

매파는 제 발로 찾아온
심실이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을 치며,
“좋은 서방감이 있네.
그 사람이 안방을 지키면 자네를 업신여길
사람은 없을 걸세.”


이튿날 심실이는
매파 방에서 냉수 한그릇 떠 놓고 혼례를 올렸다.

허우대가 멀쩡한 초로의 서생이었다.
그날 밤 심실이는 멱을 감고 30여년 전 시집올 때 해 온
비단 이불을 안방에 깔았다.


그런데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남편 죽고 수 십년만에 만난 서생이 고자가 아니던가.
날이 밝기도 전에 심실이는
매파에게 달려갔다. 눈이 휘둥그레진 매파 왈,
“아니, 자넬 업신여기는 사람이
벌써 나타났던가?
그 사람 정도면 누구도 함부로 못할 텐데….”


매파의 말에 말문이 막힌 심실이가 모기소리로,

“안방만 지키면 뭐한다요.
서로 살다보면 필시 부부싸움을 할 텐데 싸움을
풀려면 절구질을 해야 되는데
절구질은 무엇으로 할것이며 떡방아는 무엇으로 찐다요.
아이구 내 팔자가
왜 이리 기구한지.

”심실이를 업어가도 좋으니 안방에
저사람좀 데려가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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