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문어

써~니 2022. 12. 19. 11:08

 

문   어

 

허서방 부친이 운명한지

 일주기가 되자 소상 준비로 온집안이 떠들썩했다.

 

 뒤뜰에서는

 

명석을 깔아놓고 허서방 작은아버지가 해물을 다듬고 있는데

허서방의 각시가 꼬치를 가지고 왔다가 발이 붙어버렸다.

 

 “아따 그 문어 참 싱싱하네요 잉~.

우리 형님이 문어를 억수로 좋아하셨는디.”

시숙이 손질하는 문어를 내려다보며 새각시는 침을 흘렸다.  

 

밤은 삼경인데 일을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온 새신부는 몸은 피곤한데도 토옹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허서방이 방으로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새신부를 보고

 

"여보, 눈 좀 붙여야 내일 손님을 치를게 아녀?

왜 한숨만 쉬고 있어?”

 

날이 새면 시아버지 소상날인데 종부인 새며느리가

서방한테 코맹맹이 소리로 한다는 말이 “문어가 먹고

 싶어 잠이 통안 옵니다.”

문어가? 한참 생각하던 허서방이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

 

“눈을 감아도 문어만 보이고…”

맏상주인

허서방은 몰래 광으로 들어가 부친의 제사상에

올릴 문어 다리 하나를 잘라 안방으로 들고 왔다.

새신부는 눈을 크게 뜨고 입은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새신부가 부엌에서 상을 차려왔는데

제상에 올릴 청주도 호리병에 담아왔다.

문어를 썰어 양념간장에

 찍어 허서방이 새신부의 입에 넣어주자 새신부는 청주를 따라

허서방에게 올렸다. 날이 새면 소상인데 맏상주와 종부가 제상에 올릴 제수를

먹고 마시며 희롱까지 하기 시작했다.

청주를 몇잔 마신 허서방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며칠이나 안아보지 못한 새신부를 바라보며

“상복을 입으니 더 예쁘네.” 슬며시 허리를 잡아당겼다. 불덩어리가 된

맏상주와 종부는 상복을 다 벗지도 않은 채 엉겨 붙었다. ㅋㅋ
덩더쿵 쿵더쿵 방아를 돌려보세

밖에서는 소쩍새가  추임새를 맞추듯 자지러지게 울었다.

솥쩍쿵 소쩍쿵 ㅋㅋ


소상날로부터 꼭

 열달이 지나자 허서방 새신부는 달 같은 딸을 낳았다.

예쁜 딸은 무럭무럭 자랐다.

 16년의 세월이 흘러 꽃피고 새 우는 봄날에 허서방 집 마당에서는

 혼례식이 웃음꽃 속에 치러졌다.

허서방이 헌헌장부 사위를 맞아 입이 찢어졌다.

 그날 밤, 신방을 차린 사랑방의 불이 꺼졌다.

 

떡방아를 찧는가 싶더니 얼마 후 신방에 불이 켜지고

신랑이 문을 박차고 뛰어나와 행랑방에서 자고 있던 신랑집 하인을 깨워

당나귀를 타고 날이 밝지도 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신방에서는

신부의 흐느낌 소리가 허서방네 사람들의

소란 속에 묻혀버렸다.

이튿날부터 동네 우물가에서는 이런 소문이 돌았다.

“허서방 딸의 젖꼭지가 문어 흡반을 빼다 박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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