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살림에 동네일까지 잘해
마을의 보물덩어리인 몽촌댁,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데…
몽촌댁은 동네의 보물덩어리다.
시부모 살아생전에는 얼마나 잘 모셨는지 단옷날 고을 원님으로부터
효부상으로 비단 세필을 받기도 했다.
또 동네일이라면 집안 살림을 접어두고라도 앞장섰다.
핏줄도 아닌데 혼자 사는 할머니가 딱하다며 죽을 쒀 나르고
가마솥에 물을 한솥 데워 목욕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동네로 들어오는 외나무다리가 흔들린다고
남편과 둘이서 온종일 말뚝을 박는가 하면,
남의 집 길흉사엔 새벽부터 밤늦도록 제집 큰일처럼 척척 일을 처리했다.
아니라 일 잘하면 박색이라는데, 몽촌댁은 채홍사가 봤다면 궁궐로 이끌려 갈 만큼 천하일색이었다.
남편 박 서방도 마음씨가 무던한데다 육척 장신에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우대가 멀쩡했다.
또 힘이 장사라 씨름판에서 황소 몇마리를 집으로 몰고 오기도 했다.
둘은 금실도 좋아 박 서방은 장날마다 몽촌댁을 데리고 장에 갔다.
가는 길에 보는 눈이 없으면 솔티고개에서 몽촌댁을 업고 가기도 했다.
진달래가 온산을 붉게 물들인 어느 봄날,
몽촌댁을 업고 솔밭길을 걷던 박 서방이 피가 쏠렸는지
길을 벗어나 진달래꽃 속에서 몽촌댁을 눕히고 치마를 걷어 올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꿈속처럼 복을 쓰고 살던 몽촌댁이 큰일을 당했다.
산나물을 뜯으러 산에 올랐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달려간 박 서방이 마누라를 둘러업고
내려와 찬물을 끼얹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몽촌댁은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깨어날 줄 몰랐다.
이로 인해 박 서방네 집에는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
박 서방네 집뿐만 아니라 온동네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대처에 나가서 이 의원을 불러오고 저 의원을 불러와도 도대체 백약이 무효했다.
몽촌댁은 그저 자는 듯이 숨만 새근새근 쉬었다.
동네 아낙네들이 박 서방 집에 제 일처럼 모여들었다.
조 참봉네 늙은 마님은 몽촌댁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몽촌댁의 코를 잡고 꿀물을 입에 넣으니 캑캑거리며 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긴 하나
먹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석달이 지나자 몽촌댁은 꼬챙이로 변했고,
박 서방은 한숨만 토하며 주막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데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네살난 아들녀석이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제 어미와 입맞춤을 하며
씹고 있던 밥을 넣어주자 삼킨 것이다.
흰죽을 입에 넣어줘도 토하기만 하던 몽촌댁이 네살배기 아들이
오물오물 씹어준 밥은 먹는 것이었다.
방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조 참봉네 늙은 마님이 눈물을 닦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몽촌댁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오실댁은 나와 몽촌댁 곁에서 밤을 새우며
들 것이야. 북촌댁과 웅천댁은 밥 당번,
문수댁은 군불을 지피고, 민서방댁과 김천댁은 빨래를….”
각자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던 늙은 마님이
이하댁을 보더니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4년 전에 네 신랑이 죽었을 때 몽촌댁이 어떻게 했지?”
이하댁이 대답했다. “그걸 말로써 어찌 다할 수 있습니까요.
몽촌댁을 위한 일이라면 지옥에 가라고 해도 가겠습니다.”
그러자 늙은 마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몽촌댁이 설령 깨어난다 해도 이 집은 풍비박산이 날 거야.
자네도 박 서방이 주막집 주모한테 반해서 논밭뙈기를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문 들었지?”
“예.”
“박 서방을 나무랄 수만도 없는 것이 몽촌댁 다치기 전까지 하룻밤도 거르는 일이 없었대.
이하댁, 자네가 몽촌댁이 깨어나서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박 서방을 맡아줘야겠어.”
“뭐라고요?”
“지옥이 아니고 극락이야!”
이하댁은 고개를 숙였다.
“이 일은 하늘과 자네와 나와 박 서방만 아는 거야.
꼭 다짐받을 일은 몽촌댁이 박 서방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네는 박 서방과의 관계를 딱 끊는 거야, 알았지?”
“예, 마님.”
그로부터 열달 만에 이하댁의 극락도 끝이 났다.
몽촌댁이 깨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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