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분질
김판서는 만석꾼 부자에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들이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지만, 모든 걸 제쳐 두고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열일곱 살 난 외동아들 면이다. 면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훤했다. 김판서 집에 매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고관대작의 딸들이 줄줄이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김판서는 죽마고우였던 친구 이초시와 혼약을 해놓은지라 모든 청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판서 부인은 달랐다. “대감, 젊은 시절에 한 혼약을 정말 지킬 셈입니까? 대감 친구는 이미 죽었고 그 집은 몰락해 우리 면이가 그 집 딸과 혼례를 치른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요.” 그러나 김판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인, 우리의 혼약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친구가 죽고 집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