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열일곱살 순덕이

써~니 2022. 11. 16. 12:22

 

 

열일곱살 순덕이

전세(戰勢) 역전

줄줄이 이어진 동생들 업고 안고,

점심 새참 함지박 머리에 이고 종종걸음으로

밭으로 논으로 발발 쏘다녀도 힘들다는

소리 한마디 하지 않던 열일곱살 순덕이가

마침내 시집을 가게 되었다.  

순덕 어미는 그렇게도 딸을 부려 먹은 게

안쓰러운지 딸 머리를 땋아 주며 말했다.

“그 집은 식구도 단출하다니

네가 땀 흘릴 일은 별로 없을 거다.

 

발 뻗고 실컷 잠도 자고.하지만 시집이라고

갔더니 제 어미 말하고는 달랐다.

신랑과 시어머니뿐인 줄 알았는데 시집갔다던

시누이가 딸 하나를 데리고 친정살이를 하고 있었다.

시어미와 시누이는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고

큰 일, 작은 일 닥치는 대로 순덕이를 부려 먹었다“

아 메밀묵이 먹고 싶구나.

 

광에 가서 메밀 한됫박만 퍼내 와 절구질해라“

올케물 한그릇 떠 주고 우리 임단이 좀 업어 줘.

시어미와 시누이는새 며느리가 한시도

쉬는 꼴을 못 본다. 순덕이는 “예, 어머님

“예, 예, 예”를 달고 다니며 속으로 ‘내 팔자에

어떻게 일이 떨어지겠나’생각하고선

종아리가 붓도록, 어깨가 빠지도록 일을 했다.  

시어미보다 순덕이를 더 부려 먹는 건 시누이다.

 

제 손발을 뒀다가 뭣에 써먹으려는지 버선 빨아라,

고쟁이 빨아라, 쑥 뜯어 와 쑥떡 해라,

딸애 똥 치워라, 기저귀 빨아라, 등 두드려라,

어깨 주물러라 순덕이를 못살게 했다.

밤이 또 순덕이를 괴롭혔다.

용두질만 하던 한 살 아래 신랑이란 게

하룻밤도 거르지 않고 순덕이 옷을 벗겼다.

 

하룻밤에 한번이면 그나마 참겠는데 자다가도

눈만 뜨면 그 짓이다 아직 운우의 맛도 모르는

순덕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다.

동창이 밝아 옷을 걸치고 부엌에 나가려는

순덕이를 또 잡아당겨, 아침이 늦었다고

시어머니한테 호통을 맞게 하기 일쑤다.  

낮엔 앉을 틈도 없이 일하고, 밤이면 잠도

못 자게 시달려도 그것까지는 견딜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고생만은 참을 수가 없다.

혼수 적게 가지고 왔다는 걸 두고두고 말하지 않나,

쌍놈 집안에서 자라 본데가 없다느니,

 

음식 솜씨 일솜씨가 없다느니,

외아들 진을 다 빼먹는다느니,

순덕이 가슴에 못 박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댔다. 

어느 날, 동네 우물에 물 길러 갔던 순덕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집으로 왔다.

어머님,동네 여편네들하고 한판 싸우고 왔습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글쎄, 아가씨가 시집에서 쫓겨났다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쫓겨난 게 아니라 친정 다니러 왔다

했더니 모두가 킬킬 웃더라구요 .” 

 

시어미와 시누이가 눈이 동그래지는 걸 보고

순덕이가 말을 이어 갔다.“아가씨 딸, 임단이가

제 아버지는 조금도 닮지 않고 아가씨 시집 마을

뒷산 암자의 점쟁이 도사를 빼 쐈다지 뭡니까.

그래서 제가 양반 가문의 우리 시누이는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막 싸웠어요.” 

 

시어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

어떤 년들이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하더냐”

라고 말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이튿날 아침, 느긋하게 일어난 순덕이

문을 빠끔히 열고 말했다.

“아가씨, 오늘 아침 좀 해 줘. 내가 몸살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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