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노처녀 산파의 결심

◈야설=노처녀 산파의 결심◈ 옛날 어느 외딴 마을에 늙은 산파가 나이 먹은 딸 하나를 데리고 살다가 세상을 떠나자 노처녀가 시집도 안 가고 제 어미 하던 일을 자연스레 이어받았다. 서른이 가까운 노처녀 산파는 차가운 기운이 돌고 좀 쌀쌀맞았지만 백옥 같은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허리는 잘록했다. 간혹 외출을 할 때도 눈을 내리깔고 다녔고, 누가 말을 걸어도 예, 아니오 한마디뿐 더 이상 댓구를 안했다. 가끔 매파가 와서 중매 얘기라도 꺼낼라치면 등을 떼밀어 문밖으로 쫓아냈다. 노처녀 산파가 시집을 가지 않으려는 데는 그 연유가 있다. 열서너살 때부터 제 어미를 따라서 아이 받으러 다니며 수많은 여인이 아이 낳으려고 버선을 입에 물고 생땀을 쏟으며 몇날 며칠 산통을 겪는 걸 봐 왔고, 수많은 여인이 아..

야담=하수댁 셋째 며느리 꽤

야담=하수댁 셋째 며느리 꽤 하수댁에게 세번째 며느리가 들어왔다. 첫째 며느리를 쫓아내고 둘째 며느리도 들들 볶아 쫓아낸 시어머니는 또 팔을 걷어붙였다. 한번 쫓아낼 때 힘들었지 두번째는 어렵지 않았고 새로 들어온 셋째도 보아하니 기가 보드라워 보여 콧방귀를 뀌었다. 유복자 외아들을 금이야 옥이야 키워서 며느리랍시고 들어온 년한테 빼앗길 수는 없는 법! 찢어지게 가난한 오씨네 집에 매파가 들락거릴 때 부모들은 반대했지만 첫째딸 순덕이는 보릿고개 걱정 없는 하수댁네에 세번째 며느리로 들어가겠다고 했다. 열여덟살 순덕이는 이날 이때껏 부모 말 안 따른 적이 없고 누구하고도 말다툼 한번 한 적 없는 순둥이라, 그 억센 하수댁에게 시달려 한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어미가 말렸지만 생전 처음으로 제 고집을 꺾지..

소금장수 곽서방 이야기

소금장수 곽서방 이야기 아주 아주 먼옛날에 노름판에서 모든걸 잃은 곽서방, 저수지에 몸을 던지려는 그때 물 위로 한 여인이 … 소금장수 곽서방은 노름판에 잘못 끼어들어 돈을 다 잃었다. 만회하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다니던 당나귀 (PONY 2)도 헐값에 넘겨 그 돈으로 또 골패를 잡았지만, 그마저도 이경(밤 9~11시 사이)을 넘기지 못한 채 빈손이 되었다. 가을 추수하면 받기로 하고 이집 저집 깔아 놓은 외상 소금값 치부책도 반값에 넘기고 또 붙었지만 새벽닭이 울 때 다 털렸다. 막걸리 한 호리병을 나팔 불고 노름판을 나와 마당 구석에서 순식간에 날려버린 당나귀를 안고 어깨를 들썩였다. 장마 뒤끝이라 서산 위에 그믐달이 애처롭게 걸려 있었다. 소금창고를 짓고 객주를 차리려던 포부도, 참한 색시..

야화=젓도 팔고 거시기도 팔고

야화=젓도 팔고 거시기도 팔고 그옛날 젓장수가 젓통 두개를 등에 지고 동네방네를 돌며 목청을 거창하게 뽑자 개울 건너 앞산에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졌다. 스물서너집 되는 작은 산골 동네 나즈막한 초가집굴뚝엔 집집마다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마당가 감나무엔 꼭대기에 매달린 몇 개 남은 까치밥이 넘어가는마지막 햇살을 잡고 불을 머금은 듯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추수를 해서 집집마다 곳간이 그득할 때라 조 한됫박을 퍼와서 새우젓 한국자를 받아가고 나락 한되를 퍼와서굴젓 한종지를 받아 갔다. 새우젓 장수 등짐에 젓은 줄었지만 곡식자루는 늘어 더 힘들어졌다. 새우젓장수는 망설여졌다. 개울건너 외딴집하나를 보고 디딤돌을 조심스럽게 밟아개울을 건너다가 허탕을 치면 어쩌나 싶어 큰 소리로 외쳤다. "새우젓 사려..

도둑도 감동하게 한 선비

도둑도 감동하게 한 선비 조선 시대 홍기섭은 가난했지만 청렴하기로 알려진 선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홍기섭의 집안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도둑은 집안에 워낙 훔쳐갈 것이 없다 보니 솥단지라도 떼어가겠다는 마음으로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시각 도둑이 들었음을 알게 된 홍기섭 부인은 도둑이 솥단지를 떼어가려 한다고 남편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홍기섭은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보다 힘든 사람이니 저 솥단지라도 떼어가려는 것이니 그냥 가져가도록 놔두시오." 도둑은 솥뚜껑을 열어 보니 밥을 해먹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리어 솥단지 속에 엽전 일곱 냥을 넣어두고 나왔습니다. 다음 날 솥단지가 없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돈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한 홍기섭은 집 앞에 '우리 집 솥단지에 돈을 잃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