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여승(女僧)은 춤추고 노인은 통곡하다

여승(女僧)은 춤추고 노인은 통곡하다 조선시대 어진 정사를 펼쳐 태평성대를 이룬 성종임금이 있었다. 어느 날, 임금은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둘러보기 위해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몰래 도성을 순시하였다. 도성을 둘러보다가 어느 골목길로 들어서니 문득 창문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민가 한 채가 눈에 띄었다. 마침 창문이 열려 있어 방안을 들여다보던 임금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안에는 머리가 허연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 앞에 술과 안주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노인은 술과 안주를 먹지 않고 두 손으로 낯을 가린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더이상 한 것은 노인 앞에 있는 젊은 사내와 머리를 깎은 비구니였다. 사내는 상복을 입은 채 노인 앞에 앉아 흥겹게 손뼉을 치며..

홑치마 입은 과부 허벅지

홑치마 입은 과부 허벅지 옛날에 점도 치고 운세도 보고 묘 터도 잡아 주는 떠돌이 탁발승이 몇년 만에 운암골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동네에 머물 적마다 그가 묵는 집은 마을 어귀에 있는 대평씨네 집이다. 대평씨와는 동갑내기로 친구처럼 말을 놓고 지내던 사이라 사립문을 열며 “대평아, 네 형님 왔다!” 큰소리치며 들어갔는데 “아이고 도사님 오셨군요.” 소복 입은 대평씨 처가 부엌에서 나와 반갑게 맞았다. 대평씨가 벌써 2년 전에 이승을 하직했다는 말에 탁발승은 저으기 놀랐지만 “타고난 명이 짧은 사람이라….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죽을 운세를 알았다는 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탁발승이 주막에 가서 자겠다며 삽짝을 나서려 하자 “여기서 유하시며 우리 그이 명복이나 빌어 주시지요.” 그는 마지못한 척 사..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아버님, 왜 이러십니까? 조선 초기의 명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은 18년 간이나 영의정을 지냈지만 인품이 원만하고 청렴 결백하여 청백리로 불렸다. 황희 정승의 아들 중에는 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황희 정승에게 그 아들은 근심거리였다. 여러 번 훈계도 하고 때로는 매도 들었지만 아들의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황희 정승은 무언가 방법을 달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황희 정승은 술을 마시러 나간 아들을 밤늦게까지 마당에 서서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황희 정승의 어깨에 밤이슬이 내려 옷이 축축해질 무렵, 술에 취한 아들이 비틀거리며 대문으로 들어섰다. 이것을 본 황희 정승은 아들 앞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술에 취해 앞에 있는..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우가네 막내인 우 서방이 장가를 들었다. 가난한 집안의 막내라 세간이라고 받은 건 솥 하나, 장독 하나, 돌투성이 밭뙈기 그리고 철도 안 든 수송아지 한마리뿐이다. 먹고살 길은 산비탈을 개간해 밭뙈기를 늘려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려면 소가 쟁기질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툭하면 큰집 어미 소에게 달려가는 수송아지를 키워 길들이는 일이 급선무다. 우 서방은 송아지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추수하고 난 남의 콩밭에 가서 낟알을 줍고 산에 가서 칡뿌리·마뿌리를 캐다 쇠죽솥에 넣었다. 그랬더니 송아지는 금세 엉덩짝이 떡 벌어지고 머리 꼭대기엔 뿔이 삐죽 올라왔다. 이젠 길을 들일 참이다. 큰집 형님 지시대로 냇가 모래밭에 소를 끌고 나가 쟁기를 씌우곤 형님이 앞에서 코뚜레를 잡고 우 서방이 뒤에서 쟁기를 잡..

요분질

김판서는 만석꾼 부자에다 권세가 하늘을 찌르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골동품들이 모두 값을 매길 수 없는 가보지만, 모든 걸 제쳐 두고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건 열일곱 살 난 외동아들 면이다. 면이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훤했다. 김판서 집에 매파들이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렸고 고관대작의 딸들이 줄줄이 청혼을 해왔다. 그러나 김판서는 죽마고우였던 친구 이초시와 혼약을 해놓은지라 모든 청혼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김판서 부인은 달랐다. “대감, 젊은 시절에 한 혼약을 정말 지킬 셈입니까? 대감 친구는 이미 죽었고 그 집은 몰락해 우리 면이가 그 집 딸과 혼례를 치른다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거요.” 그러나 김판서는 흔들리지 않았다. “부인, 우리의 혼약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데, 친구가 죽고 집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