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뱃사공 아내와 뱃삯

뱃사공 아내와 뱃삯 청포나룻가에 단 두집이 살고 있었다. 뱃사공으로 한평생을 보낸 장노인과 농사짓는 허서방 내외는 한가족처럼 지냈다. 지난 어느 봄 날, 장노인이 고뿔을 심하게 앓아 허서방이 농사일을 제쳐 두고 장노인 대신 노를 저어 길손들을 도강시켰다. 그날 저녁, 허서방이 하루 수입을 장노인에게 갖다 줬더니 장노인은 허서방을 머리맡에 앉혔다. 장노인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이제 목숨이 다했네.” “어르신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빨리 쾌차하셔야지요.” “자네가 내 배를 계속 저어 주게나. 그리고 부엌 아궁이를 파 보게.” 장노인은 그날 밤 이승을 하직했다. 노인의 부탁도 있는데다 강 건너는 길손들을 외면할 수 없어 허서방은 날마다 노를 저었다. 하루는 노를 젓다가 문득 장노인의 말이 생..

딸애의 흐느낌에

별당 기와지붕에 내려앉은 달빛은 교교한데 풀벌레 울음소리에 묻혀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딸애의 흐느낌에 윤대감의 가슴은 찢어진다. 권참판 댁에 시집보낸 딸이 일년도 안돼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와 별당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걸 애간장을 녹이며 지켜보기 벌써 5년이 되었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면 자수를 놓으며 시름을 달래던 딸애가 방문을 열고 처마 아래 만개한 모란꽃을 보다가 범나비 암수가 어울려 춤추는 걸 보고는 신세한탄 끝에 눈물을 쏟는다. 여름밤엔 소쩍새 울음소리에 한을 쏟으며 섧게 섧게 울었다. 18세에 시집갔으니 딸애 나이도 벌써 스물셋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윤대감은 맏아들인 윤초시와 집 안팎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젊은 집사와 술잔을 나눴다. 25년 전, 아기 울음소리에 대문을 열자..

야담〓발가벗은 동기가 품속에서

야담〓발가벗은 동기가 품속에서 혼례 날짜가 아홉달이 남았는데 윤 도령은 그 전에 급제해 혼례식을 거창하게 올리겠다고 문중 재실에서 책과 씨름하고 있었다. 삼시 세끼는 멀지 않은 집에서 하녀 삼월이가 날랐다. 저녁 나절 함지박에 저녁밥을 이고 온 삼월이가 윤 도령이 식사를 다 할 동안 툇마루에 걸터앉았다가 , 빈 그릇을 이고 집으로 가는데 콰르르 소나기가 쏟아졌다. 발길을 돌려 문중 재실로 돌아왔다 . 홑적삼 치마가 소나기에 흠뻑 젖어 물에 빠진 병아리 꼴이 됐다. 초여름이지만 비를 맞고 나니 추워서 와들와들 떨다가 윤 도령이 자리를 비켜주자 옷을 벗어 짜고 널었다. 방에서 발가벗은 채 홑이불로 몸을 감쌌다. 날은 저물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윤 도령이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삼월이는 기다렸다는..

야담=여관 주인 부부와 손님

야담=여관 주인 부부와 손님 제주도에 사는 어떤 어부가 많은 돈을 가지고 서울에 와서 여관에 투숙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여관 주인 부부는 원래 성품이 간악 한지라 간계를 써서 어부가 가진 돈을 빼앗고자 하여, 그의 처에게 일러 나그네가 깊이 잠든 틈을 이용해서 살짝 나그네가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곁에 눕도록 했다. 남자 주인은 나그네가 잠이 깰 때를 기다렸다가 짐짓 노발대발하며 큰 소리로, "너는 남의 아내를 유인하여 객실로 끌어다가 간통을 했으니, 세상에 이런 사악한 나그네가 어디에 있는가!" 하며 관가에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한편, 자기 처를 때리니 그의 처가 울며 불며, "저자가 꾀어 방으로 끌고가 강제로 겁간(劫姦)을 하였소" 라고 말 하였다. 나그네는 깊은 밤에 생각지도 않았던 봉변을..

야담=과부 막실댁과 홀아비 영감

야담=과부 막실댁과 홀아비 영감 옛날!아주 먼옛날에 서른셋, 한창 농익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된 막실댁은 데리고 온 여종 삼분이와 둘이서 네댓마지기 논밭을 일궈가며 남의 집에 양식 꾸러 가지 않고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경칩이 지나서 난데없이 폭설이 내려 일손을 묶어 놓더니 갑자기 따뜻한 남풍이 불어 옛말처럼 봄눈 녹듯이 눈이 녹아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부랴부랴 밭갈이를 하느라 온 동네가 부산해졌다. 막실댁은 아랫마을로, 여종 삼분이는 윗마을로 한나절 내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소를 빌리러 다녔지만 허탕만 치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마주 보고 한숨만 쉬었다. “이모, 별수 없심더. 오목이 영감탱이한테 가는 수밖에....” 쉰을 갓 넘긴 홀아비, 오목이 영감은 두마리 소를 기르면서도 좀체로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