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속 터진 만두

찜솥뚜껑에 손을 녹이던 어린 남매 만두 하나가 없어진 것을 알고 가게주인 순덕, 뒤쫓아 가는데… 성 밖 인왕산 자락엔 세칸 초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목숨을 이어간다. 이 빈촌 어귀엔 길갓집 툇마루 앞에 찜솥을 걸어놓고 만두를 쪄서 파는 조그만 가게가 있다. 쪄낸 만두는 솥뚜껑 위에 얹어둔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피를 빚고 손님에게 만두를 파는 일을 혼자서 다 하는 만두가게 주인은 순덕 아지매다. ​ 입동이 지나자 날씨가 싸늘해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어린 남매가 보따리를 들고 만두가게 앞을 지나다 추위에 곱은 손을 솥뚜껑에 붙여 녹이고 가곤 한다. 어느 날 순덕 아지매가 부엌에서 만두소와 피를 장만해 나왔더니 어린 남매는 떠나고 없고, 얼핏 기억에 솥뚜껑 위의 만두 하나가 없어진 ..

허 생원의 유산 상속

세상 부러울것 없던 허생원… 포목점에 불이나 전재산 잃고 부인까지 저세상으로… 주위 도움으로 다시 가게 열고 자식 열다섯만 되면 시집장가 보내 세월 흘러 백발된 허생원… 칠남매 불러모아 돈 달라 하는데… 허 생원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포목점은 손님이 끊이질 않고, 아들 다섯 딸 둘 칠남매는 쑥쑥 자라고, 마누라는 아직까지 미색을 잃지 않아 허 생원은 첩살림 한번 차린 적이 없다. ​ 호사다마, 포목점에 불이 나 비단이고 안동포고 싹 다 잿더미가 된 것은 고사하고 옆집 지물포 뒷집 건어물전까지 태웠다. 설상가상, 발 달린 아이들은 가게에 딸린 살림집에서 뛰쳐나왔지만 두살배기 막내를 구하러 뛰어들어간 부인은 물에 적신 치마로 막내를 싸서 밖으로 던지고 자신은 화마에 휩싸였다. ​ 다행히 허 생원은 살..

智計妻羞(지계처수)

智計妻羞(지계처수) 어떤 권문(權門) 재상가(宰相家)의 규수 하나가 있었다. 그는 몹시 총명하고 영리하였으며 시서와 침공(針工)에 통하지 못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 성격이 몹시 비좁아서 외통으로 뚫린 그 고집은 만일에 제 뜻대로 아니될 때는 비록 부모의 앞에서라도 화를 발칵 내곤 하였다. 그러니 그 나머지 노복들에겐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이러한 소문이 전파되자 문안의 수많은 귀공자들이 장가들기를 꺼리는 것이었다. 부모가 그의 혼사가 늦어짐을 걱정하여 그의 잘못된 성격을 책하면 그는 대답하기를『인생이 겨우 100년 이거늘 어찌 부부의 낙을 위해서 자기를 굽히고 기운을 상(傷)하게 할 수 있으리까. 다만 길이 어버이의 슬하에서 모시려 합니다.』 하고 스스로 규중(閨中)에서 ..

절름발이 만들기

배운것도 없고 집안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만은 빠지지 않는 덕배 임참봉 열여덟살 무남독녀 도화와 남몰래 가끔 만나는데… 두사람 소문 들은 임참봉… 둘이 만나는 물레방앗간 들이닥쳐… 덕배는 배운 것도 없고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인물 하나는 조선 천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열여섯이 되자 제법 남정네 티가 나 키는 훤칠하고 어깨는 떡 벌어지고 목은 울대가 불쑥 솟았다. 나무하고 지게 지는 처지지만 얼굴 허옇고 콧날 오뚝하고 눈썹은 시커먼 미남이다. 휘파람을 불며 냇가를 지날 때면 빨래하던 아낙네들의 자발없는 입놀림이 이어진다. ​ “덕배가 멱 감는 걸 먼발치에서 봤는데 물건이 보통 실한 게 아니여.” ​ “어느 년이 저놈 아래 깔릴지 생각만 해도 사지가 녹아드네.” ​ 아낙들 사이에서 빨래하던 도화..

운명은 하늘에

재물이라면 물불 안가리는 곽가 애지중지 키운 아들이 고자되자… 내시로 궁중에 들여보내는데… 곽가는 재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노름판에서 사기도박을 하고, 창기를 두고 포주 노릇도 했고, 부잣집 영감에게 색녀를 붙여놓고 협박해 돈을 뜯고, 타고난 완력에 두둑한 담력으로 해결 안 될 일을 해결해주고 전대를 채웠다. 돈이 좀 모이자 고리대며 장리쌀을 놓아 섣달이면 곽가에게 논밭을 뺏겨 거지가 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 마침내 고을에서 몇째 가는 부자가 된 곽가는 진사 벼슬까지 샀다. 커다란 갓을 쓰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기침소리도 커졌다. ​ 재물에 벼슬까지 잡았으되 하나 부족한 것은 자식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첩을 얻어 씨를 뿌리던 중 머리 얹어준 기생 도화가 헛구역질을 해대더니 여덟달 만에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