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오실댁은 첫딸을 낳고 나서

오실댁은 첫딸을 낳고 나서 단산(斷産)을 하게 됐다. 임신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니 강씨 가문에 대(代)가 끊어지게 된 셈이다. 오실댁의 한숨이 깊어가자 강 진사는 부인의 등을 두드리며 “부인, 아들만 자식이요?” 강 진사는 껄껄 웃으며 젖을 빨고 있던 딸아이를 번쩍 안아올려 “남자 열몫을 할 여걸이 될 거요.” 강 진사는 오실댁을 끔찍이 아꼈다. 글 친구들과 기생집에 가더라도 외박하는 일이 없었다. 강 진사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대장부라 기생들이 서로 옆에 앉으려 하고 술자리가 파하면 금침 속으로 끌어들이려 안달했지만, 강 진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강 진사의 노부모는 은근히 아들이 첩실이라도 들여 손자 하나 쑥 뽑아내기를 바랐다. 오실댁이 어느 날 강 진사에게 “나으리, 소첩..

문어

문 어 허서방 부친이 운명한지 일주기가 되자 소상 준비로 온집안이 떠들썩했다. 뒤뜰에서는 명석을 깔아놓고 허서방 작은아버지가 해물을 다듬고 있는데 허서방의 각시가 꼬치를 가지고 왔다가 발이 붙어버렸다. “아따 그 문어 참 싱싱하네요 잉~. 우리 형님이 문어를 억수로 좋아하셨는디.” 시숙이 손질하는 문어를 내려다보며 새각시는 침을 흘렸다. 밤은 삼경인데 일을 마치고 안방으로 들어온 새신부는 몸은 피곤한데도 토옹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있다가 허서방이 방으로 들어와 쪼그리고 앉아 한숨만 쉬고 있는 새신부를 보고 "여보, 눈 좀 붙여야 내일 손님을 치를게 아녀? 왜 한숨만 쉬고 있어?” 날이 새면 시아버지 소상날인데 종부인 새며느리가 서방한테 코맹맹이 소리로 한다는 말이 “문어가 먹고 싶어 잠이 통안 옵니다..

최참봉과 멧돼지

최참봉과 멧돼지 청산골이 발칵 뒤집어졌다. 간밤에 최참봉의 선친 묘가 파헤쳐져 백골이 흩어진 것이다. 산돼지의 짓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크게 놀랐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7년 전에 이승을 하직한 최참봉의 선친은 생전에 남 못할 짓을 수없이 저지르고도 눈도 깜짝하지 않은 악덕 지주였다. 보릿고개에 굶어 죽어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장리쌀을 놓아 목줄을 걸고 있던 몇마지기 밭뙈기를 송두리째 빼앗고, 그나마 논밭조차 없는 집은 어린 딸을 데려와 이불 속 노리개로 삼았다. 소작농의 마누라를 겁탈해 그녀가 목을 매어 자살하기도 했다. 이런 악행에도 탈이 나지 않은 것은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그 집안 소작농인 데다, 포악하기 이를 데 없어 감히 항의라도 할라치면 사냥개 같은 하인들한테 무지막지 매질을 당하기 일..

새가 울면 추워요 (此鳥鳴時甚寒)

새가 울면 추워요 (此鳥鳴時甚寒) 시골의 어떤 부부가 잠자리를 가까이 할 때에는 언제나 어린 아들을 발치에서 자게 하였다. 어느날 밤 부부가 즐거움을 나누는데 굴신(屈身)이 심해지자 발치에 자고 있던 어린 아들이 이불에서 밀려났다. 이튿날 아침, 아들이 아버지에게 "간밤에 이불속에서 진흙밟는 소리가 나던데 그게 무슨 소린가요?" 하고 묻자, 아버지는 "아마 진흙새 소리(泥鳥聲)였겠지"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아들이 "그 새는 언제 우는가요?" 하고 물었다. 이에 아버지가 "때를 정해놓고 울지는 않는단다" 라고 말하자 아들이 "그 새가 울면 전 추워요" 하고 콧등을 찡그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러한 아들이 측은하게 생각되어 한참 쓰다듬어 주었다고 한다.

말위에서 움직이는 송이버섯

말위에서 움직이는 송이버섯 (馬上松餌動) 어떤 선비가 말을 타고 가는데 여러 촌부(村婦)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냇가에 다다랐을 때에 마침 스님 한 분과 만나게 되었다. 선비가 그 스님에게,"스님은 글을 아시오? 아신다면 시를 한 수 지어 보시지요" 하자 스님이,"소승은 무식하여 능하게 시를 지을 수 없습니다" 하고 겸손하게 말하는데 선비가 먼저 냇가의 빨래하는 여인네들을 바라보며, " (川邊紅蛤開) 시냇가에 홍합이 열렸으니" 하고 시를 읊고는 스님에게 다음 시귀를 재촉하였다. 그러자 스님이"선비님의 시는 육물(肉物)이라 산승(山僧)이 같은 육물로는 댓귀(對句)하지 못하겠습니다. 엎드려 비오니 채소 반찬으로라도 댓귀한다면 가히 용서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선비가"그것이 무엇이 어려운 일입니까?"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