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공생(共生) 공멸(共滅)

앉은뱅이를 목마 태운 당달봉사 ​두사람은 서로에게 눈과 발이 돼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데… 저잣거리 앉은뱅이가 두팔을 발 삼아 이 가게 저 가게를 호시탐탐 기웃거렸다. 진열대 아래 납작 엎드렸다가 가게 주인이 한눈파는 사이 얼른 한손을 올려 떡도 훔치고 참외도 훔쳤다. 그러다가 주인에게 들키는 날이면 돼지오줌통 축구공처럼 발에 차여 떼굴떼굴 굴러 나가떨어 진다. ​ 공짜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잔칫집도 빨리 가야 얻어먹는다. 앉은뱅이가 두팔로 아장아장 달려가봐야 품바꾼들이 이를 쑤시고 나올 때 들어가니 허드렛일 하는 여편네들에게 구박만 잔뜩 먹기 일쑤이다. ​ 어느 날, 맨 꼴찌로 들어간 이진사네 잔칫집에서 겸상을 받게 되었는데 마주앉은 사람은 당달봉사다. 가끔 만나는 사이라 젊은 당달봉사가 먼저 “영감..

.안자춘추(晏子春秋)

중국 고대 제(齊)나라에 안영(晏瓔)은 명 제상이 있었는데 지혜가 뛰어나 사마천도 그를 존경했다고 한다. 그런데 초(礎)나라 임금은 안영의 지혜와 기상을 꺾어 보려고 신하들과 모의를 마친 뒤에 그를 초대했다. 안영이 초나라에 당도하니 성문은 잠겨있고 그 옆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는데 성 문지기가 "저 구멍으로 들어가시지요."라고 했다. 안영은 "사람이 사는 나라에 왔으면 사람이 다니는 길로 들어가야 하지만, 개들이 사는 곳이라면 개구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겠구려........" 이 말을 들은 성 문지기는 머슷해 하면서 황급히 성문을 열어주었다고 한다. 왕은 안영을 위해 산해진미로 주안상을 차려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한 신하가 포박을 지어 사람을 끌고 그곳을 지나자 왕이 불러 세워 연유를 물었다. 신하..

흔들리는 너와집

과거시험에 아홉번 낙방한 송백기 용소에 몸던지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풍덩 소리가… 달이 네개다. 검푸른 밤하늘에 하나, 용소에 또 하나, 백기의 두눈에 고인 눈물 속에도 달이 하나씩 어른거린다. ​ ‘스물두살 송백기는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못 마셔보고, 여자 손목 한번 못 만져보고, 이렇게….’ ​ 백기가 용소에 뛰어들려는 순간 ‘풍덩’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눈물을 닦고 건너편을 봤더니 누군가 용소에 먼저 뛰어들어 휘도는 물살에 감겨 옷자락이 맴도는 게 아닌가. 백기는 자신도 모르게 뛰어들어 옷자락을 붙잡고 소용돌이와 사투를 벌였다. 죽을 힘을 다해 나뭇가지를 잡아 용소 밖으로 빠져 나와 물 속으로 뛰어든 사람을 보니 산발한 여인이다. 입에 입을 대고 숨을 불어넣고 가슴을..

한눈에 반하다.

단옷날 그네여왕 춘화 ​그녀에게 한눈에 반했다는 씨름장사와 혼례를 치르고 첫날밤 펑펑 우는데… “지화자~ 지화자 좋다. 녹음방창(綠陰方暢)에 새울음 좋고 지화자~.” ​ 기생 일곱이 뽑아내는 가락에 단오 분위기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가림막 아래 멍석을 깔고 사또와 육방관속, 고을 유지들은 술잔 돌리기에 여념이 없고 드넓은 아랑천 모래밭은 이골저골 열아홉마을에서 모인 남녀노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천변의 회나무 그넷줄은 노랑저고리 분홍치마를 매달아 올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씨름판의 함성은 천지를 뒤흔들었다. ​ 기나긴 오월 햇살이 비스듬히 누울 즈음, 씨름판도 결판이 났고 그네도 여왕이 탄생했다. 오매골 노첨지의 셋째딸, 춘화는 올해도 그네 여왕이 되어 사또로부터 비단 세필을 받았다. 그런데 춘화의 ..

극락

집안 살림에 동네일까지 잘해 마을의 보물덩어리인 몽촌댁, 바위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는데… 몽촌댁은 동네의 보물덩어리다. 시부모 살아생전에는 얼마나 잘 모셨는지 단옷날 고을 원님으로부터 효부상으로 비단 세필을 받기도 했다. 또 동네일이라면 집안 살림을 접어두고라도 앞장섰다. 핏줄도 아닌데 혼자 사는 할머니가 딱하다며 죽을 쒀 나르고 가마솥에 물을 한솥 데워 목욕시키는 것은 다반사다. 동네로 들어오는 외나무다리가 흔들린다고 남편과 둘이서 온종일 말뚝을 박는가 하면, 남의 집 길흉사엔 새벽부터 밤늦도록 제집 큰일처럼 척척 일을 처리했다. 아니라 일 잘하면 박색이라는데, 몽촌댁은 채홍사가 봤다면 궁궐로 이끌려 갈 만큼 천하일색이었다. ​ 남편 박 서방도 마음씨가 무던한데다 육척 장신에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