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춘양 주모

나루터 주막집을 운영하는 주모 동네를 돌며 외상값을 받는데… 류 진사네 사주단자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방 첨지에게 나루터 주막집 주모가 찾아왔다. 혹시 무슨 소식이라도 들고 왔나 싶어 사랑방으로 들라 했더니 한다는 말씀 좀 보소. “첨지 어른, 혼사 준비에 바쁘시죠?” 분을 덕지덕지 발랐지만 징그럽게 웃는 얼굴이 주름투성이다. “어흠, 어흠. 무슨 소식이라도 있는가? 얼른 말하고 가보게!” 주모가 눈을 아래로 깔면서 “쇤네, 한 많은 이 고을, 춘양을 떠나려고 합니다요.” “알았네, 잘 가게.” 별것이 와서 별소리를 한다는 듯 방 첨지는 곰방대에 불을 붙이며 눈알을 굴렸다. ​ “첨지 어른께서 외상값을 정리해주셔야겠습니다.” ​ “내가 자네한테 무슨 외상을 달아놨나?” ​ 주모가 치마 속에서 치부..

나주사또 박눌 이야기

나주사또 박눌 이야기 전라도 나주 땅에 "김한"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자는 처녀고 유부녀고 가리지 않고 그저 얼굴만 반반하면 수하 잡놈들을 시켜 끌고와 겁탈을 했다. 겁탈당한 여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 고을 사또라는 위인은 빗발치는 민원에 김한을 찾아와 그 앞에 꿇어앉아 한다는 말이 “어르신, 제발 유부녀만은…...” 보료에 삐딱하니 앉아 장죽을 문 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건방진 놈, 네놈 할 일이나 하지 쓸데없이 참견이야. 썩 꺼지지 못할까" 나주 사또는 김한의 눈 밖에 나 결국 옷을 벗고 물러났다. 도대체 김한은 누구인가? 그는 연산군 애첩의 큰오빠였던 것이었다. 박눌이라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러 나주 땅에 들어 섰건만 누구 하나 마중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신관 사또의 기를 꺾으려는 김한이 영접하..

나루터 주막에서 생긴일

나루터 주막에서 생긴일 이화댁에 마음 있는 소장수 방 열쇠 전해주고는 술 퍼마셔 늦은밤 방으로 가다 열린 문 보고 회심의 미소 지으며 들어가는데… 석양이 떨어지며 강물은 새빨갛게 물들었다. 어둠살이 스멀스멀 내려앉는 나루터 주막은 길손들로 들끓고 부엌에서는 밥 뜸 드는 김이 허옇게 쏟아지고 마당가 가마솥엔 쇠고깃국이 설설 끓는다. 내일 채거리장을 보러 온 장돌뱅이들, 대처로 나가려는 길손들, 뱃길이 끊겨 발걸음을 멈춘 나그네들은 저녁상을 기다리며 끼리끼리 혹은 외따로 툇마루에 걸터앉거나 마당 한복판 평상에 앉거나 마당가 멍석에 퍼질러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검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빠끔히 내민 여인이 사뿐사뿐 남정네 냄새 가득한 주막으로 들어서더니 장옷을 벗어 안방에 던져놓고 팔소매..

스님과 소장수

스님과 소장수 옛날 어느 산골에 작은 암자를 지키며 수행을 하는 스님이 있었다. 하루는 스님이 두 냥의 돈을 가지고 장터에 내려와 공양미를 사려고 쌀가게를 찾아가는데, 길가 쓰레기 더미에서 난데없이 큼직한 자루 하나를 발견했다. 그 자루를 열어보니 뜻밖에도 이백 냥이나 되는 은전이 안에 들어 있었다. 실로 처음 보는 큰 돈이라 스님은 깜짝 놀랐다. "아, 이 돈을 잃어버린 사람은 얼마나 속을 태우랴!" 이렇게 생각한 스님은 온 장터를 헤매며 돈자루의 임자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있을 때였다. 장터를 조금 벗어나 몇 발자국 떼어 놓는데 저쪽에서 소 장수가 허둥대며 달려왔다. 스님은 눈치를 채고 무슨 일이 있기에 그리 서두르는지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소 장수가 말하기를 "황소 두 마리를 사려고 사..

보쌈

청상과부로 수절하던 ‘박실댁’ 어느 날 매파가 찾아오는데… ​ 박실댁은 시집가서 한해도 지나기 전에 덜컥 신랑이 죽어 눈물로 삼년을 보냈다. 또 한숨으로 삼년을 보내고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삼년을 보내도 망할 놈의 세월은 굼벵이 귀신을 덮어 썼는지 제 나이 이제야 스물여덟살밖에 되지 않았다. 친정도 양반집이요, 시집도 뼈대 있는 대갓집이라 재혼이란 생각도 못할 처지였다. 더군다나 시아버지가 고을 원님을 구워삶아 육년 전 단옷날 박실댁에게 효부상을 내리고 은비녀와 함께 은장도를 상품으로 안겨버렸다. 박실댁이 시집은 꿈도 꾸지 못하게 족쇄를 채워버린 셈이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시어머니가 이승을 하직하자 이듬해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를 따라가 정신없이 삼년상을 치르고 나니 박실댁은 텅 빈 기와집에 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