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짝은 따로 있었네

노 첨지 재취로 팔려간 열일곱 막실이 남편이 이승 하직할 날만 기다리는데… 막실어미가 폐병에 걸려 노 첨지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다가 병을 고쳤지만 온 식구들 목줄이 걸려 있는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는 노 첨지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늙은 노 첨지가 논 세마지기, 밭 두마지기를 돌려주고 꽃다운 열일곱 막실이를 사와서 재취로 들여놓았다. 흑단 머리에 백옥 같은 살결, 또렷한 이목구비에 아직도 솜털이 가시지 않은 꿈 많은 이팔청춘 막실이. 줄줄이 어린 동생들 배 굶기지 않겠다고 제 어미 눈물을 닦아주고 제 발로 노 첨지에게 간 것이다. 노 첨지네 식구들은 단출하다. 막실이와 동갑내기인 노 첨지의 무남독녀와 우람한 덩치의 총각 머슴이 가족의 전부다. 낯선 집에 안주인으로 들어온 앳된 막실이 눈에는 모든 게 아리..

인정많은 수월댁

인정많은 수월댁 조실부모하고 장가도 못 간 채 약초 캐고 산삼도 찾아 산을 헤매는 두 형제는 앞집 수월댁을 누님이라 부른다. 노총각 둘이 사는 집이라고 수월댁은 김치다 반찬이다 수시로 갖다 주고 때때 로 쌓여 있는 빨래도 해 주고 바느질도 해 준다. 두 형제도 산삼이 라도 캐서 한약방에 팔고 나면 경쟁적으로 박가분이다 방물이다 옷감 등등을 사서 수월댁에게 보답했다.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동생은 산에 가고 형은 발목을 삐어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수월댁이 죽을 쒀 들고 왔다. 발목을 주물러 주던 수월댁이 곁눈질을 하다가 깜짝 놀랐다. 형의 하초가 차양막 지주처럼 빳빳이 곧추선 게 아닌가. 인정 많은 수월댁은 나이 찬 총각이 기운은 용솟음치는데 장가도 못 간 것이 측은해 베푸는 김에 육보시도 하기로 했다. ..

계모의 코를 꿰다

계모로 들어온 기생, 본처의 딸을 하녀 부리듯 어느날 밤 아버지없는 안방에서… 천석꾼 부잣집 외아들, 강 초시는 제 아버지 강 진사 빈소 앞에 엎드려 어깨를 들썩이며 통곡을 했다. 아버지 강 진사가 외아들에게 평생을 두고 걸었던 급제의 기대를 끝내 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한 것이 강 초시의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이다. 구일장을 치르고 강 초시는 이 방 저 방 쌓여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마당에 꺼내놓고 불태워버린 후 주막으로 가 술만 퍼마셨다. 사람이 변해버렸다.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면 조신한 부인을 두들겨 패기 일쑤고 그토록 귀여워하던 일곱살 딸도 곁에 오지 못하게 했다. 노름판에서 문전옥답 대여섯 마지기 논문서가 하룻밤에 날아갔다. 기생집 대문을 걸어잠그고 기생 일곱을 끼고 술을 마시고, 기생 ..

토끼똥에 개울물이 명약

토끼똥에 개울물이 명약 . 조 참봉은 요즘, 거시기가. 잘 서지 않는다.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떠벌리던 말수도. 부쩍 줄었다. . 추월관에서 술을 마시고 수기생이 붙여주는, 제일 예쁜 기생과 뒷방에 깔아 놓은 금침으로 들어 갔건만, 식은땀만 흘리다가. 얼굴도 못 들고 나와 버렸다. . 가끔씩, 안방에서. 부인도 안아줘야, 집안이 편한데 어린 기생 한테도 안 서는 놈이, 부인 한테. 설 쏘냐. “내 나이 이제 마흔 하나. 이렇게 인생이 끝나서는 안되지.” . 조 참봉은 황 의원 한테 매달렸다. 백년 묵은 산삼. 우황 사향. 해구신에다. 청나라에서 들어온 경면 주사까지 사 먹느라, 문전옥답 열두 마지기가 날아갔다. 그러나 효험은 없었다. 이 기생, 저 기생, 그리고 마음 편히 느긋하게 하겠다고 . 안방..

삼강주막

이초시가 술상 앞에 고꾸라지자 노대인은 이초시 부인이 자는 방의 문고리를 당기는데… 저녁상을 물리고 난 주막집은 술판으로 이어진다. 토담 옆의 홍매화가 암향을 뿜으며 초롱 불빛을 역광으로 받아 요염한 자태를 뽐낸다. “임자는 다리도 아플 터인데 먼저 들어가 주무시오. 나는 술 한잔 하고 들어갈 터.” 점잖은 선비가 부인과 겸상으로 저녁을 마치고 주모에게 매실주 한 호리병을 시킨 뒤 부인의 등을 떠밀었다. 홍매화를 쳐다보다 눈을 감고 암향을 깊이 마신 부인은 눈꼬리를 올리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나도 매실주 한잔 마시고 갈래요.” 선비는 점잖은데 그의 부인은 홍매화처럼 색기(色氣)를 풍긴다. 왼손 소맷자락으로 술잔을 가리며 한잔 마신 선비의 부인은 미끄러지듯이 평상에서 내려와 한마디 던졌다. “너무 마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