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교산댁은 첫딸을 낳고 나서

교산댁은 첫딸을 낳고 나서 단산(斷産)을 하게 됐다. 임신 자체가 불가능해졌으니 강씨 가문에 대(代)가 끊어지게 된 셈이다. 교산댁의 한숨이 깊어가자 강 진사는 부인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다. “부인, 아들만 자식이요?” 강 진사는 젖을 빨고 있던 딸아이를 번쩍 안아올리며 껄껄 웃었다. “사내 열 몫을 할 여걸이 될 거요.” 강 진사는 교산댁을 끔찍히 아꼈다. 글 친구들과 기생집에 가더라도 외박하는 일이 없었다. 강 진사는 어깨가 떡 벌어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대장부라 기생들이 서로 옆에 앉으려 하고 술자리가 파하면 금침 속으로 끌어들이려 안달했지만, 강 진사는 뒤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갔다. 강 진사의 노부모는 은근히 아들이 첩실이라도 들여 손자 하나 쑥 뽑아내기를 바랐다. 교산댁이 어느 날 강 진사에게..

중으로 바뀐 압송 아전 (僧換押吏)

중으로 바뀐 압송 아전 (僧換押吏) . 옛날에 한 중이 죄를 짓고 체포되어 문초를 당하고, 마침내 멀리 떨어진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 그리하여 형조의 한 아전이 이 중을 귀양지까지 압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며칠 동안 이 중은 그 아전과 함께 걸어가면서, 조금씩 말도 붙이고 다정하게 굴며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 하루는 날이 저물어 객점(客店)에 들어가 밤을 지내는 동안, 중은 아전에게 술을 많이 먹여 취하게 했다. . 그리하여 압송 아전이 술에 만취해 정신을 잃고 잠든 사이, 중은 그의 머리를 깎고 자신의 고깔을 씌운 다음, 자기가 입고 있던 납의(衲衣)도 벗어 그에게 입혔다. 그리고는 자신이 압송 아전의 복장을 착용하고 대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서, 그 위에 벙거지를 쓰고 긴창을 짚고 일어..

서른여섯 옥실댁

서른여섯 옥실댁 시어머니 삼년상을 치르고 탈상을 하고 나니 덩그러니 빈집에 옥실댁 혼자 남게 됐다. 상복을 태워 한줌 재로 바람에 날려 보내고 오랜만에 치마저고리를 입고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다. 지난 세월이라야 서른여섯 해밖에 안됐지만 걸어온 길이 서글펐다. 친정은 원래 양반 대갓집이었는데 아버지가 숙환으로 드러눕자 가세가 기울어졌다. 살림살이가 바닥나고야 아버지는 이승을 하직했다. 외상 약값을 갚느라 온 식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돈벌이를 할 때 옥실댁은 500냥에 팔려 시집을 갔다. 마방집 맏아들 마 서방과 가시버시가 됐다. 옥실댁은 이제 고생이 끝나려나 했는데, 이 마 서방이란 작자가 칠칠하지 못했다. 새 신부 옥실댁을 술집 작부 다루듯이 함부로 대했다. 그런가하면 툭하면 가출해 한두달 만에 불..

조선 중종때 영의정 홍언필의 일화

♧조선 중종때 영의정 홍언필의 일화♧ 어느 여름에 홍언필이 사랑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자다가 무엇인가 배를 누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뜨이지 않는 눈을 겨우떠서 보니 큰일이 났습니다. 자신의 배 위에서 커다란구렁이 한마리가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홑적삼으로 전해오는 큰 구렁이의 차가운 느낌이 섬뜩했지만 몸을 움직이면 구렁이가 물것은 뻔한 이치여서 무섭고 두려웠지만 구렁이가 스스로 내려갈때까지 꼼짝 않고 누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 구렁이는 그대로 있고 두려움은 점점커지고 소리를 지를수 없으니 속만 바싹바싹 타 들어갈때 그때였습니다. 사람이 오는 소리가 나더니 이제 여섯살이 된 아들 섬이 대문 동쪽에서 아장아장 걸어 와서 그 무서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빨간 모과? 모과가 빨갛다?

동지섣달 짧은 해가 오늘따라 왜 이리 긴가. 어둠살이 사방 천지를 시커멓게 내리덮자 마침내 신 서방이 열네 살 맏딸을 데리고 맹 참봉 사랑방을 찾았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서 신 서방은 말없이 한숨만 쉬고, 맹 참봉은 뻐끔뻐끔 연초만 태우고, 신 서방 딸 분이는 방구석에 돌아앉아 눈물만 쏟는다. “참봉 어른,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것이 아직 철이 없어서….” 맹 참봉 사랑방을 나온 신 서방은 주막집에 가서 정신을 잃도록 술을 퍼마셨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올랐을 때 신 서방은 술이 덜 깬 걸음으로 맹 참봉을 찾아갔다. “참봉 어른, 약조하신 땅문서를 받으러 왔습니다. ” 맹 참봉이 다락에서 땅문서를 꺼내 신 서방에게 건넸다. 노끈을 풀어 땅문서를 보던 신 서방이 “다섯 마지기밖에 안 되네요. 나머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