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겁탈

외딴집에 이사온 대장장이 ‘곽꺽정’ 연장 팔려고 나간 비내리던 밤 말 못하는 마누라만 있는 집에… 마을 변두리, 냇가 산자락에 외딴 빈집으로 젊은 대장장이 신랑 각시가 이사를 왔다. 빈 외양간에 풀무를 앉히고 대장일을 시작하더니, 장날이 되자 장터 구석에 칼이며 호미를 펼쳐 좌판을 벌였다. 그때 왈패 세녀석이 자릿세를 받으려다 시비가 붙었다. 구경꾼들이 빙 둘러 모여들었는데 일은 싱겁게 끝났다. ‘후다닥 퍽퍽-’ 순식간에 왈패 세놈이 질퍽한 장터 바닥에 여덟 팔자로 뻗어버린 것이다. ​ 이 일로 대장장이 곽가는 ‘곽꺽정’으로 불리며 저잣거리에서 일약 영웅이 되었다. 그는 이따금 주막에 들러 대폿잔을 기울였는데, 다른 장사꾼이 모여들어 합석해도 그저 껄껄 웃기만 할 뿐 신상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그에..

지필묵장수

자주 붙어다니던 상인 오 서방과 유 생원 폭설 속 눈에 파묻힌 털보 발견하는데… 갓장수 오 서방과 지필묵장수 유 생원은 자주 붙어 다니는 아삼륙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갓을 사는 사람도, 지필묵을 사는 사람도 부잣집 양반들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헤어졌다가도 대갓집에서 만나고 이 장터에서 찢어졌다가 저 주막에서 뭉쳤다. 경북 상주에서 황포돛배를 타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안동 영호루 나루터에서 다시 만난 오 서방과 유 생원은 강변 주막에 들어가 국밥에 막걸리 한병을 비우고 함께 객방에 들었다. “형님 먼저 주무시오. 나는 손금 좀 보고 올라요. ” 다섯살 아래 오 서방은 노름판에 끼고 유 생원은 연초 한대를 피운 후 목침을 베고 금방 코를 골았다. 동이 틀 무렵 독장수 장가(家)가 객방에 들어와 ..

의상대사와 천등산 미녀

의상대사와 천등산 미녀 신라 문무왕 때의 높은 스님 의상대사가 천등산 깊은 골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던 무렵의 일 입니다. 어느 날 저녁. 의상 스님이 천등산 중턱에 있는 바위에 앉아 염불을 외고 있는데, 어디선가 한 여인이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 여인은 몸 뒤에서 후광이 내비쳤습니다. 의상의 젊은 가슴은 갑자기 두근거렸습니다. "누구십니까?" "저는 천제의 명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여인입니다. 부족하지만 스님의 반려가 되어 섬기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는 새가 지저귀는 것 같았습니다. 의상 스님의 가슴은 더욱 쿵쾅거렸습니다. 의상은 믿음의 형인 원효대사가 한 말을 떠올렸습니다.' 불도를 닦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여자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그래서 의상은 냉정하게 ..

매일 밤 내 앞 머리빡을

황소머리를 문지르다 어느날 박서방이 암소를 끌고 접을 붙이려고 황소를 찾아 이웃 마을 강 첨지네로 갓다. 그러나 황소는 암소를 본체 만체 상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첨지가 "미안하지만 오늘은 안 되겠는데, 이놈도 한 달 동안 계속 그 짓만 해 대니 맥이 풀린 모양이야."이에 박 서방이 "하루 품을 메고 암소를 끌고 왔는 데 무슨 수가 없을까?" "옳지 참, 동네 노인들한테 들은 얘긴 데 소가 피로했을 때는 뿔과 뿔 사이를 비벼서 문지르면 정력이 생긴다던 데 한번 시험해 보면 어떻겠나?" 이말에 황소 임자는 큼직한 쇠솔로 황소의 양 미간을 쓸어 주었다. 그러자 황소가 정력이 솟아나서 암소가 씨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박서방은 흐뭇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다. 그 다음 달에 박 서방은 또 다른 암소를 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