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고전 285

때늦은 회한

홀시어머니 호된 시집살이도 눈물 한바가지로 견딘 효실 남편 시앗소식에는 잠 못 이루는데… 가난한 선비의 딸, 효실이 부잣집 노 대감의 외아들에게 시집갔다. 인물 좋고 착하고 예절 바른 효실이 시집을 잘 갔다고 동네가 떠들썩했다. 그런데 효실은 시집살이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친정 신행길을 다녀오고 바로 알아차렸다. 시집식구라고는 시어머니 하나뿐이어서 극진히 모시겠다고 다짐했지만, 새침한 시어머니는 작정하고 효실의 오장육부를 뒤집기 일쑤였다. “한번 풀어보고 하도 기가 막혀 그대로 처박아 놓았다. 네 눈으로 똑똑히 봐라. 이것도 혼수라고…. 끌끌끌.” 효실은 우물가에서 실컷 울고 난 뒤 세수하고 들어오는 게 일상사가 되었다. 두살 위의 신랑, 용무도 제 어미한테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내가 너를 어떻게 ..

못 믿을 건 여자?

못 믿을 건 여자? 한 초시는 또 과거에 낙방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삼십리 밖 천석꾼 부자 조 참봉 댁 집사로 들어갔다. 쓰러져 가는 초가삼간에 신부 혼자 남겨 두기 뭣해서 늙은 이모님을 불러다 함께 지내도록 했다. 한 초시가 하는 일이 고되지는 않았다. 조 참봉의 서찰을 대필해 주고 장부를 만들어 소작농들을 관리하고 곳간의 재고를 기록하는 정도다. 한달에 집에 갈 수 있는 사흘을 빼면 나머지 날들은 조 참봉 댁 행랑채에서 잠을 잔다. 월말에 집에 갈 땐 구름을 타고 바람에 흘러가는 듯 하지만 아리따운 새 신부와 꿀 같은 사흘을 보내고 조 참봉 집으로 돌아올 땐 천근만근 발길이 무겁다. 조 참봉의 생일날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들자 산해진미가 상다리가 휘어져라 상에 올랐다. 행랑채 호롱불 아래서 한 초시도..

주모의 기둥서방

주모의 기둥서방 주모가 갈림길에 섰다. 기둥서방을 들일 건가 말 건가? 서로 장단점이 있다는 걸 주모는 잘 알고 있다. 장점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이 과부라고 깔보지 않는다. 엿장수고 갓장수고, 늙은 놈이나 젊은 놈이나, 양반이나 상것이나 노소귀천을 가리지 않고 양물을 찬 놈들은 과부 치마 벗길 궁리만 한다. 술에 취해서 주막이 파한 후에 안방으로 쳐들어오지 않나, 곰방대에 불 붙인다며 부엌에 들어와 술상 차리는 주모의 치마 밑으로 손을 넣지 않나…. 든든한 기둥서방이라도 있으면 이런 꼴은 당하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술 처먹고 밥 처먹고 나서 돈 없다고 치부책에 외상 달아놓으라고 뻔뻔스럽게 나오는 놈들도 부지기수다. 해가 바뀐 외상도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 놈들이 어깨가 떡 벌어진 기둥서방이 치부..

개마고원 산적

친정 신행길에 오른 새신부, 가마째 산적에 납치되었는데… 함경도 갑산(甲山) 사또가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길은 요란했다. 말 다섯필 잔등엔 호피, 여우가죽, 수달피, 말린 웅담, 호골, 산삼, 하수오 등등 값비싼 개마고원 특산품들이 바리바리 실리고 금은보화와 묵직한 전대도 실렸다. 칼을 차고 창을 든 포졸 넷이 호위하고 집사와 하인 셋이 따르는 긴 행렬이 화동령 협곡을 지날 때였다. 우르르 쾅쾅, 절벽 위에서 바위가 연달아 떨어지며 화살이 빗발치자 이임 사또 행렬은 혼비백산했다. 이튿날 동헌에서 육방 관속이 나오고 보부상에 호사가들이 발걸음을 멈춰 화동령 협곡은 장터처럼 법석거렸다. 사또 행렬은 구름처럼 흩어져 그림자조차 안 보였다. 오직 사또만이 발가벗긴 채 소나무가지에 대롱대롱 거꾸로 매달려 있었는데..

원숭이 띠

제일 똑똑하다고 큰소리 친 ‘오수’ 재주만 믿다 나무서 떨어진 원숭이처럼 손대는 일마다 쫄딱 망하는데… 오수는 민첩하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해도, 헤엄을 쳐도 또래 친구들이 그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머리까지 팽팽 잘 돌아 영악스럽기 짝이 없다. 한가지 흠이라면 ‘자만’이다. 세상에서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없기에 항상 자기 주장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남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는다. 어느 날 밤, 친구들이 모여 수박서리를 가기로 했는데 오수가 나서 임 첨지네 집에 닭서리를 가자고 방향을 틀었다. 임 첨지는 며칠 전에 족제비한테 닭을 몇마리 잃은 터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게다가 성질이 고약해 들키면 큰 낭패를 볼 것이라고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오수는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아니나 ..